“자위 그만하고 싶어요” 소년 고백에…칼날 든 속옷을 건넸다 [사색(史色)]
[사색-17] 소년은 종일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젯밤 문득 욕정이 일어 ‘수음’(자위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이웃 마을 처녀를 생각했기에 죄책감은 더욱 컸었지요. 꽃과 동물을 사랑했고, 종교에 신실했던 그였습니다. 신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늘 되새겨 왔었기에 스스로를 더욱 용서할 수 없었지요.
날이 밝자 그는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겸허히 고백합니다. “목사님, 제가 수음의 죄를 범했습니다.” “회개하라 주님의 어린 양이여, 너를 용서하노라, 다만 이걸 차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도록 하게.”
18세기 영국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 자위행위는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큰죄였습니다. 신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지요. ‘자위’는 악마의 속삭임과 진배없었지요. 그렇다고 역사 속에서 ‘손 장난’이 늘 소박만 맞았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숭상한 시기도 있었지요. 자위의 역사를 사색합니다. 마침 곧 솔로들을 위한 블랙데이(4월 14일)가 찾아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중세부터 근세까지 유럽에서 자위는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기독교가 유럽의 종교로 자리 잡은 이후, 그들은 시민들의 성을 통제하는 미시권력이었지요. ‘정욕=원죄’와 같은 것이었고, 성적 욕망이란 어떻게 해서든 통제해야 하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부부간의 성관계가 아닌, 오직 쾌락만을 위한 자위행위라니요. 큰 죄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독일 보름스 지역의 신학자였던 부르카르트가 11세기 편찬한 ‘교령집’의 내용입니다. “수음한 남자는 10일에서 20일간 빵과 물만 먹는 참회 고행을 하여야 한다.”
열흘 동안 두 가지만 먹는 게 고역이라면 고역이겠지만, 대수롭지는 않은 처벌이었지요. 죄로 규정된 다른 행위의 처벌 강도만 봐도 그렇습니다. 구강성교에는 3년의 참회 고행이 따랐습니다. 부부관계 시에 정상위(남성이 위로 가는 성행위)가 아닌 자세로 해도 마찬가지로 3년이었지요. 자위행위가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용인될 행위로 봤다는 방증입니다.
역사학자 캐서린 하비는 “젊은 청년들에 욕망을 무작정 틀어막을 경우, 강간과 같은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같은 이유로 기독교는 매춘에도 눈을 감았지요.
‘자위’ 용인이 영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사회가 점점 보수화되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중세초까지만 해도 자위는 성당의 말단 신부가 처리해야 할 정도로 작은 죄였습니다. 하지만 14세기가 되는 중세 중기 이후부터는 자위는 심각한 죄로 여겨지지요.
1380년대 프랑스에서는 ‘대주교’가 직접나서 자위의 고해를 직접 듣고 참회고행을 지도하라는 지침이 내려옵니다. 그만큼 이를 심각하게 봤다는 의미지요.
파리 대학 학장이었던 신학자 장 제르송은 자위 행위자들로부터 고해성사를 듣는 방법에 관해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위를 “혐오스럽고 역겨운 범죄”라고 규정했지요. 서유럽 인구의 3분의 1 인구를 앗아간 흑사병의 창궐이 보수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배경이 됐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인류를 하나님이 심판한 것”이라는 기독교적 해석이 먹혀들어 갔던 셈이죠.
“물의 신 엔키가 자신의 물건을 꺼내더니 흔들기 시작했다. 절정의 순간, 그곳에서 봇물이 터지터니 이내 강을 이뤘다. 후대인들은 이를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라 불렀다.”
이집트의 창조신인 아툼 역시 자위행위를 통해 탄생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후대인들 사이에선 이집트의 파라오가 나일강에서 의무적으로 ‘공개 자위행위’를 했다는 풍문이 있는데, 이는 헛소문입니다) 중세 유럽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던 셈입니다. 고대 그리스 또한 자위를 자연스럽고 건강한 행위로 여겼지요. 그들은 도자기에 정령 사티로스를 그려 넣으면서 자위행위를 묘사하곤 했습니다.
“자위행위를 즐기는 이들은 간질, 히스테리, 턱관절 질환에 시달릴 것이다. 정자가 퇴화된 나머지 병든 아이를 낳거나, 자살하게 된다.”
티소 박사는 한 환자의 뇌를 관찰하더니 “뇌가 말라버려 썩은 호두알처럼 굴러다니는 소리가 난다”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자위로 인한 정액의 과도한 유실로 규정해 버립니다. “정액 1온스의 손실은 혈액 40온스의 손실과 같다”는 명언도 남겼지요.
루소 역시 ‘에밀’과 ‘고백론’에서 “자위는 정신적 강간”으로 규정합니다. 당시는 계몽주의가 유럽 전역에 퍼지던 시기였고, 교훈적 수필집이 열광적으로 팔리던 시대였지요. 오늘날 전문가들의 자기계발서가 퍼지던 것처럼요. 자위는 구원받기 힘든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유럽에서 자위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정조대가 끊임없이 개발되던 것도 이시기였습니다. 코르셋 모양으로 성기를 조여주는 게 있는가 하면, 날카로운 칼날이 성기를 둘러싸 음탕한 생각을 원천 봉쇄하는 정조대도 있었지요.
자위행위에 대한 일련의 저주를 걷어낸 이들은 역시 과학자였습니다. 생물학자 해브록 엘리스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는 1897년 “건강한 개인이 어느 정도 자위행위를 한다고 해도 심각히 해로운 결과가 반드시 뒤따르지는 않는다”고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선언하지요.
미국의학협회의 자위행위를 “정상적인 것”으로 선언합니다. 1972년이 되어서야 이뤄진 ‘해방’이었지요. 로마제국 멸망 이후 인류는 1700년 동안이나 눈치를 보며 자위를 했었던 셈이지요. 1995년에는 ‘국제 자위의 날’(5월 7일)이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ㅇ이시카와 히로요시, 마스터베이션의 역사, 해냄, 2002년
ㅇ제프리 리처즈, 중세의 소외집단-섹스·일탈·저주, 느티나무, 1999년
ㅇ알랭 코르뱅 외, 몸의 역사2, 길, 2017년
<네줄요약>
ㅇ고대 신화에서 ‘자위’는 탄생신화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신성한 행위로 여겨졌다.
ㅇ중세 유럽에서 기독교가 들어서면서 ‘자위’가 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ㅇ계몽주의 시절에는 ‘자위’가 죽음에 이끄는 길이라고 설명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칼날 찬 자위 방지 정조대도 개발된다.
ㅇ과학자들의 “자위는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발표가 수십년간 이어져서야 자위는 해방됐다. (우리가 즐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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