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패배자입니다, 그래서 늘 인생 걸고 합니다

대전/이영빈 기자 2023. 4. 15.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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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출신 마사, ‘8년만에 1부리그 승격’ 대전 돌풍 이끌어
프로축구 대전 하나시티즌 일본 선수 이시다 마사토시(K리그 등록명 마사)가 지난 11일 대전 덕암축구센터 그라운드에 누워 축구공을 손에 들고 포즈를 취했다. 마사는 훈련장에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마지막에 떠나는 연습 벌레로 유명하다. 나머지 훈련을 자청하는 마사 때문에 대전 코치진은 ‘칼퇴’가 어렵다고 한다. /신현종 기자

‘패배자 마사’. 프로축구 K리그 대전 하나시티즌 일본 선수 이시다 마사토시(28·등록명 마사)를 부르는 별칭이다. 지난 2021년 2부 리그 승격 플레이오프 경기를 앞두고 가졌던 인터뷰에서 그가 이렇게 말한 데서 유래했다. “저는 축구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경기가 있습니다. 승격, 이거 인생 걸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민성 대전 감독은 “모든 선수가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우리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한 한마디였다”고 했다.

비록 그때는 승격에 실패했지만, 작년 마사와 대전은 기어코 1부 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대전의 8년만에 1부리그였다. 이어 올 시즌 개막 후 약체라는 예상을 뒤엎고 1부 리그를 휘젓고 있다. 개막전에서 강원FC에 2대0으로 승리하면서 상쾌한 출발을 알리더니 이후 5경기 무패(3승 2무)로 일약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마사는 지난 1일 FC서울과 경기 막판 3대2를 만드는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렸다. 대전은 지난주 수원FC에 역전패하면서 주춤했지만 12팀 중 4위. 이대로라면 1부 리그 잔류뿐 아니라 리그 3위까지 주어지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넘볼 수도 있다. 지난달 열린 K리그 개막 간담회에서 이민성 감독은 “첫 11경기 중 5승을 거둬 잔류의 발판으로 삼겠다”고 소박하게 말한 바 있으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11일 대전 덕암축구센터에서 만난 마사는 정작 “재작년에 승격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스스로를 왜 패배자로 불렀을까. 마사는 유소년 시절 안정적인 드리블과 넓은 시야로 일본에서 손꼽히는 유망주였다. 일본 국가대표 간판 혼다 게이스케(37·은퇴)의 뒤를 이을 거라는 기대도 받았다. 2014년, 19세 어린 나이로 J리그 교토 상가에서 프로 데뷔를 했지만, 이후 유망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체했다. 5년을 지지부진하다 2019년 K리그2 안산 그리너스 제안을 받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마사는 “원래 유럽 진출을 꿈꿨다”면서 “그러려면 더 이 악물고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만한 각오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변곡점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는 큰맘 먹고 어렵게 건너온 이역(異域) 안산에서 한 달 반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초반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선발에서 제외된 것. 이대로라면 축구 인생이 정말로 끝날 것 같았다. 감독을 찾아갔다. “못하면 방출해도 된다. 뛰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기회를 얻었고 13경기에서 9골을 몰아 넣었다. 그는 “그때 마음의 힘을 알았다. 벼랑 끝에 있다고 생각하니 안 되는 게 없더라. 지금도 늘 그런 각오로 뛰고 있다”고 했다.

이제 28살. 적잖은 나이다. 한국에서 한 경기 한 경기 ‘인생을 건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다들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결국 패배자로 보내는 날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승리의 기쁨은 잠깐이고 패배의 절망은 후유증이 크니까요. 저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리어를 쌓지 못했습니다. 축구 인생의 패배자죠. 하지만 지금 저는 대전에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합니다. 축구 말고도 곳곳의 많은 ‘패배자’들이 저를 보면서 위로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사가 맞닥트린 당장의 목표는 오는 16일 1위 울산 현대(승점 18)와 일전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개막과 더불어 6연승을 달린 울산은 대전을 상대로 K리그 개막 최다 연승 기록(7승)에 도전한다. 대전(승점11)에도 기회다. 이기면 다른 팀 경기 결과에 따라 다시 2위로 뛰어오를 수도 있다. “울산, 이기지 못한다는 법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도 인생 걸고 합시다!” 그는 결연했다.

승격 후 초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대전 하나시티즌(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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