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2030·중간관리자...직장 괴롭힘 허위신고, ‘만만한 상대’ 노렸다
공공 부문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A씨는 근무 시간에 연예인 이야기를 계속하는 20대 후임 B씨에게 “이제 일에 집중하자”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B씨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상급 기관 고충 처리 부서에 A씨를 신고한 것이다. 평소 B씨가 무슨 말을 하건 A씨가 무시했다는 게 이유였다. 조사 과정에서 신고 내용이 허위라는 게 밝혀졌지만, A씨는 “조사관들이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죄인 취급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해마다 증가하는 가운데 허위 신고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여성, 20~30대, 중간 관리자’ 등 직장에서 입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근로자가 주요 표적이다. 2019년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직장 내 갑질 문화를 개선하는 효과를 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2019년 2130건,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지난해 7814건 등 매년 늘고 있다. 이 중 허위 신고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전체 신고 건수가 늘어남에 따라 허위 신고도 증가 추세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4일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과 박윤희 이화여대 교수가 허위 신고 피해로 추정되는 사례 126건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피해자의 66.7%는 여성이었고 56.3%는 20~30대였다. 남성 근로자와 40대 이상 근로자가 허위 신고를 당한 경우는 각각 33.3%, 43.7%였다. 직급별로는 46.0%가 중간 관리자, 42.1%가 평사원이었다. 사업주·상급 관리자는 11.9%로 가장 적었다. 허위 신고자들이 직장에서 힘이 센 사업주나 상급 관리자보다는 여성이거나 젊은 중간 관리자, 같은 직급 선임자처럼 ‘만만한’ 대상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허위 신고자는 ‘보상’을 먼저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진짜 괴롭힘 피해자들은 ‘가해 행위를 중단하고 가해자와 자신을 분리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허위 신고의 경우에는 물질적 보상이나 실적 인정, 근무평정 상향, 계약 연장 등을 먼저 요구한 경우가 85.4%에 달했다. 또 허위 신고자들은 신고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신고를 거듭하는 특성을 보인다.
연구진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한 회사 측이 진상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신고당한 근로자를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허위 신고를 당한 근로자들은 회사로부터 ‘개인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라’는 압박을 받거나(28.8%·이하 복수 응답), 여러 조사관이 돌아가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방식의 조사를 당했다(28.8%)고 호소했다. 또 실제로 징계를 당하거나(23.1%), 혐의를 인정하라는 등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압력을 받았다(17.3%). ‘정식으로 조사해 달라’는 요청이 무시당했다는 경우도 23.1%였다.
연구진에 따르면, 현행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는 허위 신고에 대한 제재 조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허위라는 게 밝혀져도 신고자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민간 기업 내에서 벌어진 허위 신고에 대해선 무고죄도 적용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허위 신고 등으로 괴롭힘 방지법을 악용하는 것은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처벌은 피하고 보상만 노리는 가해 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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