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수지간 한국 여야 협치의 ‘기적’, 국민 혈세로 선심성 돈 뿌릴 때
여야는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합의 처리했다. 양당 원내대표는 “두 법안에 아무런 이견이 없다”며 본회의에 우선 안건으로 올려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두 공항 건설과 이전에 20조원의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예비 타당성 조사도 면제했다. 사사건건 충돌하던 여야가 자기들 텃밭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찰떡 공조한 것이다.
앞서 여야는 국회 상임위 소위에서 공공 투자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의 면제 대상을 크게 늘리는 법 개정안도 합의로 통과시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도로·철도 등 지역 민원·선심성 사업을 예타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손을 마주 잡은 것이다.
한국 여야는 거의 원수처럼 싸운다. 그러나 포퓰리즘 정책이나 선심성 복지·SOC 사업, 자기들 밥그릇 챙기는 일에는 한 몸처럼 움직인다. 국회 예산 심사 때마다 한통속이 돼 지역 민원 사업 예산을 무더기로 끼워 넣는다. 쏟아지는 증액 요구로 정부안보다 10조원 이상 불어난 예산이 예결위로 넘어갔다. 비공개 예산소위에는 지역 민원 쪽지 예산이 매년 수천억원씩 들어갔고, 밀실에서 갈라 먹는다.
여야는 코로나 보상금과 노인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현금을 뿌리는 데도 예외 없이 한목소리를 냈다. 작년 코로나 손실보상금 지급을 위한 62조원 규모의 추경에 합의하면서 생기지도 않은 추가 예상 세수를 미리 당겨 쓰겠다고 했다. 전례 없는 ‘가불·외상 추경’이었다. 그간 적자 추경에 반대했던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 정책에 발목을 잡아온 민주당이 지방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돈 풀기에 합심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민주당이 고교 무상교육을 2년 내 실시하는 안을 내자, 국민의힘은 당장 앞당겨 시행하는 안을 냈다. 민주당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표를 의식한 국민의힘도 맞장구를 쳤다. 가상화폐 과세에 청년층이 반발하자 여야는 곧바로 과세 유예에 합의했다. 세금을 뿌리는 데도 손을 잡고 세금을 깎아주는 데도 손을 잡는다.
여야는 자신들 세비와 국회 예산 등 제 밥그릇 챙길 때는 완벽하게 한 몸이다. 작년 정부 예산안에도 없던 의원 복지·홍보·출장비와 보좌진 월급 등을 제 맘대로 증액했다. 선거 때마다 경쟁적으로 세비 삭감을 공약했지만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세비를 셀프 인상했다. 세비는 1억5000만원대로 올라 국민소득과 대비할 때 OECD 국가 중 셋째로 높다. 2010년 5급 비서관을 증원하더니 2017년에는 8급 비서를 또 늘렸다. 북유럽은 의원 2명이 비서 1명과 일하는데 우리는 보좌진이 9명이다. 의회 효과성 평가에선 북유럽이 최고인데 우리는 꼴찌 수준이다. 매일 싸움판만 벌이는 여야가 국민 혈세를 선심성으로 뿌리는 일에는 협치를 하는 ‘기적’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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