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시작해 해피엔딩으로 나아가는 드라마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40여 년 공직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니 서운하기도 하지만 좋은 일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한 공부는 공직 생활에 필요한 것 위주였다면 이후로는 그런 굴레를 벗어나 제가 좋아하는 것 중심이니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책을 읽으며 행복감을 느꼈지만 이제 책을 쓰면서 또 다른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좋아서 하는 공부가 자연스레 책 쓰기로 연결되니 더욱 좋습니다. 코로나로 칩거가 강요되는 시간을 활용하여 2022년과 2023년 독일 정치와 독일 총리들의 리더십에 관한 책 1, 2권을 차례로 썼습니다. 지인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하지만, 제가 좋아서 즐기며 한 일이니 칭찬받을 일은 아니나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조금 행복합니다.
독일에 관한 책을 쓴 것은 우리나라의 지속적 발전을 바라는 공직 은퇴자로서의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나치 정권의 600만명 유대인 학살 등 만행으로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로 국가는 패망하고 국토는 분단되고 국민은 도탄에 빠지는 등 참혹한 역사적 비극을 경험하였습니다. 이처럼 철저히 패망한 독일이 짧은 기간에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통일까지 이루어, 지금은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며 EU의 중심 국가로서 국제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범 국가가 되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엄청난 반전(反轉)입니다. 독일은 통절히 반성하며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다짐하였고 온 국민이 단합하여 국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독일은 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와 같았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현대사는 희망의 등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감동의 역사였습니다. 비극으로 시작하여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드라마와도 같았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였을까 탐구하는 공부를 시작하였다가 느낀 것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감히 책 쓰기에 나섰습니다. 독일의 그와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정치 제도와 이를 운영하는 정치인, 특히 총리들의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근자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정치가 갈수록 혼탁해져서 국민의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독일에서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 이전 2021년에도 “소통, 공감 그리고 연대(총리실 880일의 기록)”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김순은 교수의 요청에 따른 강의 원고, 총리 퇴직 시 총리실에서 만들어 준 언론 자료집과 총리 재직 중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을 바탕으로 하여 생각을 더듬고 보태어 지나간 일을 가볍게 회고하는 방식으로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쓴 책입니다. 직책을 수행하면서 어디에 중점을 두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저만의 고민과 방법을 후배 공직자나 행정학자들은 물론 국민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핵심은 온 국민이 서로 소통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바탕 위에서 사회적 연대를 이룰 때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2022년에는 독일 베를린 소재 LIT 출판사에서 ‘Ich gehe jetzt in die Bibliothek namens Deutschland’(나는 지금 독일이라는 이름의 도서관에 간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이 책은 전 주한 독일 대사 등 저의 독일 지인들이 제가 쓴 독일 관련 글이나 독일에서의 강연 원고를 모아 독일어로 출간한 것입니다. 우연히 제가 쓴 글 몇 개를 번역하여 읽어 보고, 독일을 이해하는 전 한국 총리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독일 이야기가 흥미 있고 유익하다며 번역 출간을 제안하였습니다. 한스울리히 자이트(Hans Ulrich Seidt) 전 대사는 독일 외교관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원고 초벌 번역만을 해서 독일로 보냈을 뿐 원고를 가다듬고 출판사를 정하는 문제 등은 독일 지인들이 알아서 처리하고 책을 독일 각계에 배포하였습니다. 책 제목도 그들이 정했는데, 제가 2013년 독일로 공부하러 떠나며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따왔습니다.
아무튼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나름대로 유용하게 보낸 것은 보람이자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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