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기억과 애도, 죽은 자의 생일 축하하기
몇달 전 같은 학과에 계시는 선생님이 전시를 보러 가신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따라나섰다. 내가 일하는 학교 근처에 있는 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전시였다. 전시는 좀비를 주제로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것’에 관한 생각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다양한 양식의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전시장 한편에 일본 작가 후지이 히카루의 작품 두 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하나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문을 닫은 도쿄현대미술관의 모습을, 다른 하나는 후쿠시마 원전 참사로 방사능에 오염된 후타바시역사민속박물관 소장품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었다. 잠시 쉴 겸 앉아서 영상물 앞에 마련된 긴 의자에 앉았다. 함께 간 선생님은 첫 번째 영상물에 연결된 헤드폰을, 나는 두 번째 영상물에 연결된 헤드폰을 썼다.
내가 본 영상물에는 <핵과 사물들>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는데, 열 명이 넘는 학자들과 관련자들이 방사능 오염으로 폐기될 박물관 소장품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관해 토론하고 있었다. 주요 내용은 소장품에 미친 보이지 않는 폭력의 영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다. 예컨대 지진이나 화재로 인한 피해는 부서진 집이나 타고 남은 폐허 등으로 당시의 처참함을 기억하고 드러낼 수 있지만, 방사능이나 대기오염이 사물에 미친 보이지 않는 폭력은 그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방법은 모르겠지만 일단 무조건 자료들을 최대한 모아왔고,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보이지 않는 폭력의 영향을 드러내고 기억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사물에 미친 보이지 않는 폭력을 기억할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외감과 더불어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 이태원 참사가 떠올라서다. 이태원 참사 당시 폭력의 영향을 선명하게 드러냈던 영상 이미지들이 소셜 미디어와 언론 매체를 통해 가감 없이 유통된 반면, 정부는 이러한 폭력과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봉합했다. 그 명분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정부는 죽은 사람이 좀비가 되어 산 자를 공격할 수 있다고 우려한 듯하다. 그렇다면 왜 영상물 속 학자들은 한낱 폐기되어 사라질 물건을 기억하기 위해 이다지도 노력하는 것일까? 죽은 것을 기억하는 것은 살아 있는 자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태원 참사와 달리, 세월호 참사 때는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기억하기와 애도하기에 동참했었다. 당시 나는 안산에 살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때 죽은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녔던 단원고도 내가 살던 곳에서 멀지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멀리 떨어져 있는 볼거리가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의 일이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자주 다니던 경기도 미술관에 학생들의 영정이 빼곡히 채워진 추모 공간이 만들어졌고, 사건이 발생한 후 수년 동안 많은 이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해왔다.
당시 온라인 공간에서 빈번하게 등장했던 추모 실천 가운데 하나는 죽은 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당시 살아남은 학생들은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죽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살아 있었다면 맞이했을 생일을 축하했다. 마치 이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축하하고 메시지를 남기며, 이들을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로 불러왔다. 이러한 행위는 어떠한 정치적인 구호나 요구 없이 참사가 없었으면 계속되었을 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재구성함으로써 세월호 참사로 죽은 이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기꺼이 자신의 일상에서 죽은 이들을 불러와 머물게 하며,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는 곧 세월호 참사가 살아남은 자신들의 삶에 미친 보이지 않는 영향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일은 세월호 참사 9주기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들을 기억할 것인가?
채석진|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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