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라면과 함께라면
황홀한 맛이었다고 한다. 처음 경험한 라면에 대해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다. 1964년 입대 직후 육군 신병훈련소에서였다. 취사병이 큰 솥에 대량으로 끓이고 훈련병들이 줄 서서 먹은 라면은 면발도 맛도 아무튼 별로였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는 국민소득 1인당 100달러 시대. 1963년 9월 국내에 등장한 10원짜리 삼양라면은 혁명적인 특식이었다.
나도 밥보다 라면을 더 좋아한다. 첫 라면을 떠올리면 바둑돌 소리가 난다. 아버지는 이따금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내기 바둑’을 두었다. 지는 사람이 라면을 사는, 소박하되 불꽃이 튀는 진검 승부였다. 딱! 딱! 딱! 흑돌과 백돌이 살겠다고 한참 몸을 부대끼고 나면 밥상에 어김없이 라면이 올라왔다. 냄새만으로 군침이 돌았다. 아버지가 이기든 지든 아들은 행복했고 언제나 승자였다. 라면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
한국인에게는 이 음식에 대한 기억과 취향이 저마다 있다. 라면 앞에서는 거의 모두가 평등하다. 남녀노소도, 보수·진보도, 빈부 차이도 없다. 대기업 회장도 가끔 이 B급 먹거리를 먹지 않곤 못 배길 것이다. 우리는 어릴 적에 라면을 끓이며 불과 물, 음식의 상호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간편한 식품 이전에 라면은 삶이라는 드라마에 꼭 필요한 조역이었다.
라면과 짜장면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라면은 주기(週期)가 더 빨리 돌아오는 중독성 식품이다. 그런데 라면을 향한 감정은 이중적이다. 나트륨이 중죄인 취급을 받는다. ‘건강을 생각해 국물까지 드시지는 마세요’ 경고하는 라면도 있었다. 한밤중에 라면 생각이 굴뚝 같을 땐 갈팡질팡한다. 에라 모르겠다 끓여 먹지만 다음날 후회하곤 하는 ‘길티 플레저(죄책감이 부가된 즐거움)’다. 짜기로 말하자면 찌개가 더 심각하다.
라면은 환갑이 된 지금도 육칠백 원에 한 끼를 해결하는 미덕을 가졌다. 술을 정량 이상으로 마시고 집에 돌아왔는데 허전할 때가 있다. 잠깐 고민한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걸 안 먹나.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 불을 켠다. 라면으로 신속하게 해장을 하곤 또 생각하는 것이다. 가만있자. 찬밥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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