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민주당이 악당이라면 우리는 쓰레기였다”
그들이 없었다면 2년 뒤 대선 기적도 없어
투표장 줄선 청년들을 무서워하는 정당이라니
2020년 4월 총선은 우파에 핵폭탄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진보좌파 190석, 보수우파 100석. 1987년 이후 이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총선은 없었다. 보수 정당은 수도권•중산층•중도를 포섭하는 ‘3중 전술’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그런데 3년 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지역적으로는 영남, 연령대로는 60대 이상으로 완벽하게 고립됐다. 보수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주류가 아니었다.
잔해라도 있어야 평가할 수 있는데, 당시 보수에는 잔해조차 없었다. 보수 원로들이나 전문가들도 망연자실했다. 집권은커녕 보수 재건조차 입에 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나마 눈에 띈 건 30대 낙선 청년들이었다. 또래들이 철저히 외면하고 혐오했던 보수 정당 간판으로 40%대의 지지율로 고군분투했던 그들 목소리를 토대로 보수 정당의 징비록을 만들어보려 했다. 실패를 연구해야 새로운 모색이라도 할 수 있다.
“노땅 현역들은 안락한 영남에서 당선되고, 청년들은 수도권 험지로 보냈다” “민주당이 악당이었다면 우리는 괴물, 쓰레기였다.” “무슨 목사, 극우 유투버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이 중도층에 악영향을 미쳤다”
낙선했던 30대 보수 정치인들의 목소리(본지 2020년 4월 18일 자)는 이랬다. 서울 노원에 출마했던 이준석은 “탄핵 등 연속 패배를 당한 뒤에도 권위주의적 당 문화, 구시대적 계파 싸움, 특권적 사고방식을 전혀 청산하지 못했다”고 했다. 도봉에 출마했던 김재섭은 “민주당이 이기면 사회주의로 간다고 했는데 전혀 공감을 얻지 못했다”고 했고, 김포의 박진호는 “청년들이 당의 주도권을 쥐고 세대·인물·철학을 바꿔야만 대선을 치를 수 있다”고 했다. 그때 이준석 35세, 김재섭 33세, 박진호 30세였다. 대구 출신으로 전남 순천에 출마했던 34세 천하람도 낙선했다. 해당 기사에는 “내부 총질” “어린놈들이 남 탓만”이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2020년 총선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2년 뒤 보수 정당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는 기적이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맞섰던 검찰총장 대선 후보의 등장만으로는 설명하긴 어렵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2022년 대선 현장에서는 보수 정당에서 볼 수 없던 젊은이들이 스스로 유세차에 올랐다. 이준석은 제1 야당의 당대표가 됐다. 이대남, 이대녀 갈등이 있었지만 보수가 절대 약세였던 20대와 30대에서 팽팽한 대결이 없었다면 0.7%포인트의 대선 승리는 불가능했다.
더 놀라운 일은 대선 이후 일어났다. 손님 대접을 받던 청년들이 한순간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내부 총질 이야기가 나오더니 일부에선 ‘좌파’라는 낙인까지 찍으려 했다. 이준석, 천하람, 김재섭이 섰던 자리에 판사, 검사, 경찰 출신의 지도부가 들어섰다. 어느 목사를 두고 벌이는 당 대표와 지자체장의 말싸움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무슨 목사와 극우 유투버에게 휘둘렸다”던 3년 전 비판 지점으로 완벽하게 돌아갔다.
민주당 사람들이 국민의힘에 가장 부러워했던 것이 자신들에게 없는 우수한 30대 정치인들이었다. 민주당에 정치 신인들을 계속 제공했던 운동권 인맥은 50대에서 사실상 중단됐다. 학생운동의 쇠퇴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에는 실력과 재능이 있는 청년들이 제 발로 모여들었다. 적어도 민주당 누구처럼 이모 교수와 이모를, 호주와 오스트리아를 혼동해 웃음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걷어차고 윽박지르더니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투표장 앞에 줄을 선 청년들을 보면 가슴을 졸이는 정당으로 돌아갔다. 청년들을 두려워하는 정당은 미래가 없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20대, 30대의 지지율은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다는 노동개혁이 미래 세대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건 가짜 뉴스 때문만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를 만들었던 청년들을 이렇게 취급하면 안 된다. “민주당은 악당이라면 우리는 쓰레기였다”던 3년 전 총선 징비록을 다시 읽다가, 1년 뒤 국민의힘에 닥칠지 모르는 미래를 예언한 묵시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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