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와 고등어, 김장김치의 만남… 한반도 사람 중 거부할 자 있으랴
아버지는 부산에 내려와서도 서울 입맛을 버리지 못했다. 25년 전,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도 영도 산복도로 좁고 좁은 골목 한편에 자리를 잡았지만 서울에서 먹던 음식이 늘 밥상 가운데 있었다. 손에 잡히는 젓갈을 모조리 넣은 듯한 부산식 김치에 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회가 흔한 곳이지만 아버지는 늘 회가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대신 부모님은 노가리포, 파채에 골뱅이를 넣고 비벼 을지로 공구거리에서 먹던 기분을 냈다. 생선으로 만든 음식으로 치면 고춧가루를 살짝 뿌린 동태탕이 아버지가 제일 좋아한 음식이었다. 가족 모두가 좋아했던 것은 고등어, 그중에서도 고등어조림이었다. 무와 고등어, 여기에 간간한 국물을 더하면 늘 밥 한 공기가 모자랐다. 여기에 김장 김치 남은 것을 함께 넣어 묵은지 조림을 하는 날에는 밥을 한 번 더 지어야 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혹은 한 번이라도 이 한반도 땅 위에 살았던 이라면 이 음식을 보고 이성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묵은지와 고등어의 만남은 그다지 어려울 게 없어 보이지만 제대로 하는 집 찾기가 만만치 않다. 먼저 떠오르는 집은 문래동의 ‘소문난식당’이다. 이름이 농담 같지만 한번 가보면 소문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단번에 든다. 메뉴는 단 한 가지 ‘김치고등어조림’이다. 이 집은 3개월 정도 익은 김치를 써서 조림을 낸다. 문래역에서 내려 이 집에 가는 길에는 여전히 슬래브 지붕을 한 집이 곳곳에 있었다. 삐걱거리는 미닫이 문 하나에 가정집을 개조해 쓰고 있는 이 집의 모습도 동네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노부부가 딸과 함께 운영하는 이곳에 들어서면 어릴 적 동네 친구 집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시골에서 직접 기른다는 채소로 만든 밑반찬은 매일 바뀐다고 했다. 시큼한 김치와 튼실한 고등어 살점을 발라내 흰밥 위에 올리면 다이어트는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2인분에 반 포기 정도 나오는 김치는 아삭한 식감이 남아 있었다. 죽죽 세로로 찢어 가며 입에 넣었다. 여기에 바삭하게 구운 김을 싸먹으면 흰밥 한 공기가 턱없이 모자랐다. 보리차로 목을 축이며 밥을 먹고 따로 준비된 숭늉까지 비우면 구수한 향기가 비강을 통해 흘러나왔다.
오래된 동네를 떠나 가야 할 곳은 위례 신도시다. 야산을 끼고 높지 않은 아파트들이 병사들처럼 오와 열을 맞춰 서 있는 위례에는 좁은 골목길이 없었다. 대신 카페 거리에는 상가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명칭대로 카페가 한 집 걸러 있는 이곳에서 한낮 사람들이 가득 붐비는 식당이 있었다. ‘만선고등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집은 말 그대로 고등어 전문, 그중에서도 묵은지 조림을 전문으로 팔았다. 반듯한 직사각형 내부에 주방은 출구 맞은편에 시원시원하게 뚫린 구조를 하고 있었다. 네모난 테이블에 앉으니 주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곁들임 구성을 빼면 식사 메뉴는 ‘고등어 묵은지 조림’ 단 한 가지였다.
주문 후 얼마 되지 않아 나온 고등어 묵은지 조림의 모습은 스펙터클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귀로는 뜨거운 돌판 위에서 국물이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눈으로는 빨간 묵은지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먹기도 전에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왜 공깃밥이 필요하면 언제든 더 준다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묵은지를 자르기 위해 가위는 필요가 없었다. 반찬처럼 조금씩 먹어서는 해결이 안 되는 양이었다. 샐러드를 먹듯이 묵은지를 한 움큼 밥 위에 올려야 기별이 갔다. 고등어에서 빠져나온 기름기와 김치의 신맛이 자웅을 겨루듯 팽팽하게 맞섰다. 그 모습은 소스라는 이름으로 유화처럼 덧칠된 서양의 느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소리 저 소리가 하나의 장단에 마구 뒤섞여 흥을 돋우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커다랗게 잘린 무는 속 깊숙이까지 맛이 배어 자투리도 남기기 아쉬웠다. 국내산만 쓴다는 고등어는 알이 굵고 마릿수가 많아 마치 묵은지의 바다에서 계속 잡혀 나오는 고등어 떼 같았다. 시골에서 직접 짠 들기름으로 지진 두부 부침을 곁들이니 시고 맵고 고소한 기운이 사방을 채웠다.
이 맛이라면 아마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영원에 가까운 그 평생이란 시간 동안 아버지는 서울의 맛을 잊지 못했다. 아마 지금의 나도 그런 기억을 쌓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이 걸은 길을 뒤따라 간다. 그리하여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모님을 닮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소문난식당: 김치 고등어조림 1만원, (02)-2635-0570
#만선고등어: 돌판 고등어묵은지조림 1인분 1만2000원, 두부부침 8000원, (0507)-1304-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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