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달큼한 과일과 신선한 야채의 향기가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차오른다. 에드가 칼렐의 작품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덕분이다. 작가는 광주에서 30여개의 자연석을 수집해 마치 제기(祭器)처럼 사용했다. 돌 위에 술을 따르고, 꽃으로 돌을 어루만지고, 과테말라에서 가져온 향을 흔들어 의식을 시작한다. 돌 위에는 한국의 제사상에서 볼 수 있는 과일들을 비롯한 야채가 놓여 있다.
칼렐은 과테말라 중서부 고원 지역의 선주민인 카치켈 부족의 일원으로, 마야족의 세계관을 계승했다. 그는 선조들의 전통을 자신이 경험한 일상의 장면과 연결해 동시대의 예술언어로 엮는다. 작가는 그들이 몸으로 익혀온 우주론이 서양의 인식론, 가치체계와 부딪치며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지역에 토착화된 옛 지식은 새로 유입된 세계와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더 나은 합일점을 추구하며 삶을 윤택하게 이끌기도 한다. 제의의 문화를 계승해 온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의식의 과정은,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펼치는 서구적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존에 그가 보여주었던 라틴아메리카 선주민들이 겪어온 여러 층위의 폭력과 차별에 대한 저항의 입장은 이번 작업 안에도 스며들어 있다.
서구적 의미의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 마야의 후예에게 ‘예술’은 삶의 지혜와 지식,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둔 세계를 지향한다. 예술과 영성 사이에서, 작가는 서구화된 제도가 거세하거나 왜곡하기 쉬운 오래된 목소리가 부드럽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싱그러운 과일향을 맡으며, 강렬하게 저항하기보다 따뜻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조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오래된 선주민의 문화는 지금 내가 매몰되어 있는 현실을 환기시킨다.
김지연 전시기획자·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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