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철학·예술을 과학으로 설명하는 날이 올까

장강명 소설가 2023. 4. 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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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전스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기압이 기체 분자의 운동 결과라는 걸 알고 감명받은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는 원소의 화학적 성질이 가장 바깥 전자껍질에 있는 전자에 달려 있다는 걸 배우고 놀랐다. 이상기체 방정식과 운동에너지 공식이, 물리학과 화학이 연결되는 순간. 신기하기도 했고, 숨어 있던 깊은 질서의 존재를 깨닫는 듯해 잠시 숙연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문화사 분야에서 역작들을 써낸 논픽션 작가 피터 왓슨은 그런 발견들이 19세기 중반부터 과학사에서 빈번히 일어났으며, 현재도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주장한다. 물리학이 화학과 거의 합쳐졌고, 화학과 생물학이 만나 분자생물학을 낳았다. 이제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이 한데 어우러지고 고고학, 유전학, 언어학이 협력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한 분야의 연구가 다른 분야 연구의 도움을 받고, 여러 학문의 연구 대상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큰 그림이 드러나는 지적 사건들에 뭐라 이름을 붙여야 할까. 왓슨은 에드워드 윌슨이 사용한 ‘통섭(consilience)’ 대신 ‘집합, 수렴’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컨버전스(convergence)라는 용어를 택했다.

704쪽짜리 책 ‘컨버전스’(책과함께)의 앞부분 3분의 2가량은 지금까지의 통합 서사를 흥미진진하게 정리한 과학사 서적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이 서사가 암시하는 바를 추측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도발적인 과학철학 교양서다. 저자는 환원주의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과감히 나아간다. 앞부분도 재미있지만 나는 뒷부분이 더욱 흥미로웠다.

그래서, 종국에는 모든 학문이 하나로 합쳐질까? 철학, 예술, 윤리를 과학이 설명하는 날이 올까? 물리학과 수학이 통합된다면, 우주가 곧 수학이라는 의미일까? 우리가 아는 모든 현상과 이론 뒤에는, 언뜻 무한해 보이는 다양성을 낳은 심오한 질서가 숨어 있고, 우리는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을 뿐일까? 그 원리가 바로 ‘궁극의 진리’인가? 아니면 이게 다 최근 과학의 성과에 놀란 학자들이 벌이는 호들갑일까? 여러 분야에 두루 관심 있는 지적인 독자라면 분명히 빠져들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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