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동맹도 없는 정보전…스노든 사건 때 오바마 “계속할 것”
[제3전선, 정보전쟁] 미 기밀 누설로 본 우방국 첩보활동
사실 우방국의 기밀을 빼내는 정보활동은 별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극비 군사정보까지 공유할 정도로 자타가 인정하는 우방이지만, 이스라엘의 미국에 대한 정보활동은 일상적이다. 오히려 더 적극적일 때도 있다. 1985년 폴라드사건이 좋은 예다. 1985년 10월 1일 이스라엘이 튀니지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임시본부를 급습했다. 미국은 극비 중의 극비인 PLO 임시본부의 위치를 이스라엘이 어떻게 알았는지 의심했다. 수사에 착수한 연방수사국(FBI)은 해군 정보분석가인 폴라드(J. Pollard)가 이스라엘의 스파이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이스라엘이 유대인 혈통의 열렬한 시온주의자인 폴라드를 이용하여 미국의 군사·외교 암호체계는 물론 리비아에 대한 소련의 무기 제공,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 동향, 중동 국가들의 방공망 실태 등 초특급 군사비밀을 빼돌린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동에서 암약하는 미국 정보원 명단까지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보고받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중요 정보를 계속 제공하는데도 이스라엘이 스파이를 심은 것에 대해 격노했다. 폴라드는 국가반역죄와 간첩죄로 30년 이상 복역한 후 2020년 석방되었다. 그 해 12월 30일 이스라엘 국민으로 살기 위해 귀국하는 길은 평범한 이스라엘 국민과는 사뭇 달랐다. 전용기가 제공되고 네타냐후 총리가 직접 공항에 마중 나오는 등 영웅 대접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반역자인 폴라드가 이스라엘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은 것이다. 정보는 ‘적도 친구도 없다’는 비정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국익위한 정보활동 자연스러운 현상
처칠의 뒷받침 하에 비밀 정보팀은 공격적으로 활동했다. 그레타 가르보,에롤 폴린 등 인기 여배우들과 월터 리프먼,드류 피어슨 등 일류 칼럼니스트를 통해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유럽이 짓밟히고 있는데 분노한다며 반전 및 중립여론을 참전여론으로 돌리는데 적극 나섰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등 참전 반대단체에 대해서는 납치와 협박 등 물리적 위협도 서슴치 않았다. 이 뿐만 아니다. 독일이 남미 약소국들을 점령한 후 미국까지 공격한다는 위장 지도를 만들어 반(反)독일 여론을 증폭시켰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훗날 자신의 참전 결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위장 지도를 언급할 정도로 파괴력이 컸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기를 맞은 영국의 입장에서 우방에 대한 외교적 결례나 윤리적 정당성은 오히려 사치였을 것이다.
미국의 정보활동이 우방과 동맹국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공지의 비밀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전화통화를 도청한 건 2013년 스노든 사건을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 사건은 외교문제로 비화된 이후 논란과정이 더 흥미롭다. 독일은 메르켈 총리, 내무장관, 외무장관 등이 나서 동맹의 신뢰를 훼손하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는 성명과 함께, 1968년 체결한 독일주둔 미군의 안전에 관한 정보제공 협정을 일시 중단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국민여론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2014년 독일의 해외정보기관인 BND가 미국 정보기관과 공조하여 유럽 우방국에 대한 도청공작을 실시한데 이어, 2017년에는 독자적으로 미국 백악관 등을 도청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때 독일은 도청사실 여부에 대해 어떠한 해명이나 유감 표명은 물론 시인도 부인도 않는 것(NCND)으로 일관했다.
정보활동으로 우호관계 손상 드물어
둘째, 국가간에는 ‘깨끗한 손’(Clean Hands) 원칙 또는 ‘귀국(貴國)도 마찬가지’(Tu Quoque) 원칙이라 불리는 관행이 암묵적으로 확립되어 있다. 자신도 정보활동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정보활동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으로, 미 국방부는 이를 국제법 상의 원칙으로 간주하고 있다. 가령 러시아의 대미(對美) 정보활동에 대해 미국이 크게 문제 삼지 않은 것은 미국도 러시아에 대해 정보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내로남불 금지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규범이 정보분야에서 나름대로 질서있게 잘 작동하고 있다.
영국 철학자 홉스의 말처럼 독립된 주권국가가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국익을 위한 정보활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우방국에 대한 정보활동이 누설될 경우 외교논란이 야기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국가들은 정보관리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균형 잡힌 외교적 대응도 필요하다. 도청 당한 국가의 국민들은 마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그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아울러 정보의 현실을 놓치지 않는 냉철하고 지혜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스노든 사건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우방국의 신뢰를 훼손한 것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정보 활동 그 자체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들이 행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계속 실행할 것”이라고 한 발언이 정보의 숙명을 잘 보여준다. 국민들은 ‘우리도 다른 나라에 대해 비밀 정보활동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넓은 지혜가 필요하다. 정보활동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안위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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