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서도 디자인·코딩 등 가능…모두가 농사 지을 필요는 없어” [불황에 늘어나는 귀농·귀어 창업]

황건강 2023. 4. 1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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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박준기 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이 국토관리 관점에서 귀농·귀촌을 강조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농촌에 들어오는 사람 모두가 농사를 지을 필요는 없다.”

박준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최근 경기 불황 속 귀농·귀촌 증가 추세가 과거와 다른 점은 기술의 발전”이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과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은 농가의 판로 개척에 도움을 주고, 농산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농촌 입장에선 농사 이외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열린 만큼 귀농·귀촌 지원을 농업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국토 관리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Q : 경기 불황에 귀농·귀촌이 늘었다.
A : “정부의 통계를 보면 금융위기 이후 귀농·귀촌이 활성화된 흐름이 나타난다. 최근 수년간은 도시의 집값 상승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여전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나 농지 상속으로 인한 귀농도 많다. 예전부터 있던 일이다. 주목할 점은 IT의 발전이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디지털화가 가속화하면서 거리나 공간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농촌을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Q : 농사와 상관없는 이동이란 지적도 있다.
A : “디자인이나 코딩 등 책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시골에 내려와서 하는 경우도 있고, ‘제주도 한 달 살기’처럼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단지 쉬다가 돌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농촌과 도시를 오가면서 사는 ‘관계인구’도 늘었다. 농촌 입장에선 농업이 가장 중요하단 사실에 변함없지만, 국토 관리 측면에선 단순 이주도 소중하다.”

Q : 어째서인가.
A : “도시에서 벗어나면 문화와 의료, 교통 등 인프라 부족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수요가 있어야 이런 인프라도 갖출 수 있다. 과거에도 어렵게 귀농·귀촌을 선택한 사람들 상당수가 이런 인프라 부족에 실망하며 다시 도시로 돌아가곤 했다. 우리 국토 전체에서 도시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16.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농림·자연 환경 보전 지역이다. 그러나 도시엔 4500만명이 모여 사는 반면 농가 인구는 어림잡아 220만여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고령층이 다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Q : 농촌 소멸이 우려되는데.
A : “귀농·귀촌이 늘었다고 해도 연간 50만명 안팎이다. 농촌 공동화를 막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구 유입이 필요하다. 농촌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를 막지 못하면 귀농·귀촌을 결심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넓은 면적의 국토 관리를 누가 할 것인지 공백이 생긴다. 생활 인프라가 갖춰져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촌에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마트워크 업무 활동도 지원하고 주말에만 쉬다가는 농촌 다주택자에게 세제 혜택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Q : 농업은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데.
A : “식량 안보 차원에서 농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예컨대 쌀과 같은 품목이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쌀을 재배했을 때 1헥타르(ha·1만㎡, 약 3000평)에서 거둬들이는 소득은 1000만원이 채 안 된다. 농지 가격도 비싸서 젊은 귀농인이 토지를 매입해 쌀농사에 나섰다간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쌀 농가 데이터를 살펴보면 70세 이상이 42.7%다. 이분들은 이제 다른 작물에 투자하거나 전환하기 어려워 계속 쌀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농업 현장에서 젊은 귀농인들이 농지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서 식량 안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Q : 귀농·귀촌이 식량 안보에 도움이 되려면.
A : “한국은 곡물자급률이 20% 수준이다. 귀농·귀촌이 지금 같은 추세 이상으로 늘어도 식량 생산량에 큰 변화를 주기 어렵다. 귀농·귀촌을 국토 관리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그래도 쌀 만큼은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제도가 시장을 왜곡시킨 측면이 있다. 예컨대 과거 변동직불제가 대표적이다. 쌀가격이 목표가격에 미달하면 차액을 보전해 농가 소득을 보전해주겠다는 취지였으나 쌀에 대한 과잉생산을 유발했다.”

Q : 지금도 양곡관리법이 논란인데.
A :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살 수 있다’에서 ‘사야 한다’로 바꾸자는 게 현재 개정안의 핵심이다. 관건은 쌀 1인당 소비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의무매입 신호를 준다는 게 시장에 어떤 신호를 주느냐다. 쌀 농가 입장에서는 다른 작물로 전환할 유인이 적어지고, 장기적으로 쌀 농가와 쌀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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