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국민 휴대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라

하수정 2023. 4. 15. 00:4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늘며 척추 환자 급증
10대부터 척추 손상 위험 노출
한해 1100만명 척추 질환 고통
진료비 4.5조원…건보재정도 부담
의사가 말하는 초간편 예방법
"휴대폰 대신 하늘을 바라보라"
하수정 유통산업부 차장

전 국민의 휴대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면 어떨까. 스마트폰 보급률 95%로 세계 1위인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에서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부터 한번 설득을 해보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 찾아간 한 척추 전문병원에서부터다. 장시간 노트북 앞에서 업무를 하다 갑작스럽게 요통이 생겨 내원한 병원 대기실에는 20, 3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가득 차 있었다. 교복을 입은 10대도 보였다. 의사에게 왜 이렇게 젊은이들이 많은지 물었다. “대부분 목·허리 추간판(디스크) 탈출이나 척추 측만증 같은 증상이지요. 2010년 스마트폰 보급 이후에 젊은 세대 환자가 확 늘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찾아봤다. 2021년 기준 척추 질환 환자 수는 1131만 명. 전체 인구의 22%에 달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아 ‘일십백천만…’하며 여러 차례 세 봤는데, 이 숫자가 맞다. 한 해에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척추 질환으로 병원에서 진료받았다는 것이다.

2021년에 처음 척추 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한 신규 환자는 118만 명이었는데, 그중 47만 명(40%)이 20~30대였다. 10대 환자도 17만 명(14%)이나 됐다.

척추 환자가 이렇게 많다 보니 관련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다. 건강보험급여 청구자료를 보면 척추 질환 총진료비는 2021년 기준 4조4700억원이다. 2016년 3조800억원에서 5년 새 약 1조4000억원 늘었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케어’에서 척추 등에 적용하던 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 지원을 축소하려는 것도 환자 급증으로 의료 쇼핑과 건보재정 지출이 함께 늘어났기 때문이다.

‘척신’이라고 불리는 유명 척추 전문 의사의 유튜브 구독자는 100만 명이 넘는다. 포털 사이트 ‘척추 질환 환우모임’ 카페 회원도 30만 명 이상이다. 게시글엔 퇴직 후 식당을 차렸다가 만성 척추 질환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은 자영업자, 수능 앞두고 디스크가 터져 시험을 포기한 학생 등의 사연이 넘친다. 왜 이렇게 척추 질환이 늘어난 것일까. 우리 몸을 지탱하는 기둥인 척추뼈는 모두 26개다. 경추 7개, 흉추 12개, 요추 5개, 천추와 미추 1개씩이다. 측면에서 보면 척추뼈는 두 개의 S를 합친 듯한 곡선 모양이다. 목 부분은 앞쪽으로 휘어져 있고(경추전만), 등은 뒤로(흉추후만), 허리는 다시 앞쪽으로(요추전만) 곡선을 나타내는 것이 정상이다.

척추뼈 사이에는 쿠션 역할을 하는 디스크가 있는데 갑자기 충격이 가해지거나 장기간 압력을 받으면 디스크를 감싼 막이 터지며 수핵이 흘러나와 신경을 자극한다. 목과 허리뿐 아니라 팔, 골반, 다리까지 통증이 오고 심하면 마비 증상이 생긴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는 한 척추 부담은 불가피하다. 첫 직립보행 화석인 3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부터 그랬을 수 있다. 평생 중력에 대항해 4㎏가량의 머리를 지탱하는 경추와 체중 절반을 지탱하는 요추는 나이가 들며 점차 퇴행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척추 질환이 생기는 것은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게 의사들의 진단이다. 척추 질환 급증은 스마트폰 사용과 맞물린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0.7%에 불과하던 2007년 척추 환자 수는 890만 명이었다. 2010년 스마트폰이 본격 확산해 보급률이 14%로 올랐을 때 척추 환자는 처음으로 1100만 명을 돌파했다.

보통 휴대폰을 쳐다볼 땐 목이 푹 숙어지고 허리는 구부러진다. 경추전만과 요추전만이 완전히 무너진다. 노트북 앞에 있을 땐 ‘거북목’ 상태로 꼼짝없이 앉아 있다. 청소년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장시간 허리를 구부린 채 앉아 공부하다가 쉬는 시간엔 목을 숙이고 스마트폰을 본다. 이 자세가 바로 디스크 질환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디스크 탈출 증상으로 다리를 잘라내고 싶을 정도의 통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당장 아이들의 휴대폰을 집어 던지고 굽은 목과 허리를 펴주고 싶은 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의사들이 얘기하는 예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1시간에 10분씩이라도 경추전만과 요추전만을 만드는 바른 자세를 하는 것이다.

휴대폰 사용 시간을 막는 건 실현 불가능한 제안이란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단지, 이 글을 읽은 한 사람이라도 굽어진 등을 스르륵 펴고 자세를 고쳐 잡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전 국민이 튼튼하고 아름다운 S라인 척추를 갖는 그날까지 계속 외치고 싶다. “1시간에 10분씩 휴대폰을 내려두고,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시다.”

해외투자 '한경 글로벌마켓'과 함께하세요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