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 아는데 왜 이 사람은 모를까
데어라 혼 지음
서제인 옮김
정희진 해설
엘리
유대인을 묘사하는 가장 강력한 스테레오 타입은 뭘까. 아마도 ‘돈이 많고 권력을 가졌다’일 것이다. 서구 사회만 아니라 유대인과 직접적인 접촉이 덜한 한국 사람들 다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 책(원제 People Love Dead Jews)의 저자는 “(그런 평판은) 서구 세계에서 유대인을 비인간화하고 박해하기 위해 사용되어온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주장과 논란이 제기됐는데 이 책에는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유대인들에 관한 진솔하고 반전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저자는 『안네의 일기』나 『베니스의 상인』 등에 비친 유대인의 모습과 실제 유대인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비교하면서 그 괴리를 날카로운 통찰력과 유려한 필치로 정밀하게 그려 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안네가 살았던 ‘안네 프랑크의 집’은 해마다 100만 명이 넘게 찾는 명소. 그런데 이 박물관 고용주는 젊은 유대인 직원에게 유대인의 상징인 모자(야물커)를 야구모자 속에 쓰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내비쳐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 이 직원은 나중에 다시 야물커를 쓰게 됐지만, 지은이는 이 사실을 예로 들면서 “죽은 유대인은 기리고 보전하고 사랑하면서 살아 있는 유대인의 삶은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들어 있지 않은 『안네의 일기』는 유명하지만, 실제로 아우슈비츠수용소의 지옥 같은 삶을 고스란히 기록한 잘만 그라도프스키라는 이름과 그의 일기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유는 무엇인가 반문한다.
이 책에는 한나 아렌트, 마르크 샤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등 유대계 예술가와 석학들에게 비자를 만들어 주고 안전한 나라로 탈출시켰던 ‘선한 비유대인’ 조력자 배리언 프라이의 생애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그의 구조기는 ‘쉰들러 리스트’ 이상으로 매우 흥미 있는 스토리임에 틀림없지만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홀로코스트가 끝난 지 80년이 다 돼 가는 지금도 서구에서 반유대주의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유대인이 무엇이길래 이런 끔찍한 역사가 수천 년 동안 반복되고 있을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유대인의 정체성에 관한 해답이 어렴풋이 그려질 것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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