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사물

2023. 4. 1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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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시리즈 중 장대패, 2019년. ©최수연
어느 목수가 사용하던 장대패의 옆모습이다. 몸통을 쥔 손이 미끄럽지 않도록 그어 놓은 빗금이 문양을 이루어, 순박한 목공예품처럼도 보인다. 무쇠 날은 녹이 슬었지만, 나무의 빗금 주변에는 오랜 세월 손때 묻어 반들반들한 윤기가 아직 남아 있다.

한 번도 주인공이었을 리 없는 작은 손도구가 조명을 받아 크고 어엿하게 찍힌 모습은, 그 자체로 반전의 호쾌함을 준다.

대패에서부터 끌·망치·접이자·정에 이르기까지 목수의 손도구들을 초상사진인 양 정갈하게 찍은 사진가 최수연의 사진 시리즈 ‘목수’. 단지 옆모습일 뿐인데 우리 눈에 낯설게 보이는 도구들도 있고, 생김만 보아서는 어떤 쓰임새를 지녔는지 도통 가늠키 어려운 도구들도 있다. 다만 한결같은 것은, 모든 도구들이 일생 동안 목수로 살다 간 사람이 남겨 놓은 유품이라는 점이다. 인간문화재처럼 이름난 생은 아니었지만, 긴 세월 동안 짊어지고 숱한 현장들을 다니며 가족을 먹여 살렸던 손도구.

사진가 최수연은 2007년에 연 첫 개인전 ‘논’을 시작으로 2011년 ‘소’에 이르기까지, 사라져가는 우리네 농촌의 풍경과 풍속을 긴 시간 천착해 선보였다. 2015년에는 강화도에서 남도까지 전국을 떠돌면서 이 땅의 풍경과 길에서 만난 여러 삶의 모습들을 사진 시리즈 ‘유랑’에 담아 전시했다. 이렇게 사진기를 들고 유랑하지 않는 동안에는 손수 나무를 깎고 다듬어 가구와 목기 등을 만드니, ‘목수 사진가’라는 특이한 호칭도 그의 것이다.

“사진을 찍은 손도구들은 몇 해 전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유품으로, 제가 물려받아 현재도 직접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구에 흔적들이 있어요. 저에게는 그 흔적들이, 도구가 자기를 사용했던 사람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졌어요.”

이를테면, 측량할 때 자의 한쪽 축을 잡아야 하는 접이식 나무줄자의 숫자가 지워진 부분은, 평생 그 줄자를 사용한 사람의 엄지와 검지의 간격이다. 그래서 사진 시리즈의 제목이 사물이 아니라 사람을 지칭하는 ‘목수’다.

작고 수수한 사물이 인간의 삶을 기억하고, 사진은 고요히 그 기억을 전해준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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