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데 보고 고요한데 듣는 감각의 제국

2023. 4. 1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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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굉장한 세계
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어크로스

지구는 ‘감각의 제국’이다. 소리와 진동, 냄새와 맛, 광경과 질감, 전기장과 자기장 등 동물이 인지할 수 있는 감각으로 가득하다. 동물은 종마다 자신만의 감각 능력으로 외부를 감지하고 경험하며 인식한다. 과학저술가인 지은이는 각 종의 동물이 ‘환경 세계’로 불리는 감각 거품에 각각 둘러싸여 있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감지·경험할 수 있는 감각이 지구상에 있는 동물 수십억 종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 같은 환경도 서도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도 올빼미는 발달한 청력을 이용해 먹잇감인 생쥐의 움직임을 상하좌우로 포착한다. 적기의 위치·고도·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현대 군함의 이지스 전투시스템 못지않다.

개는 인간과 좀 다르게 색깔을 본다. 사진은 대체로 삼색형인 인간의 색각을 모델링했다. [사진 에드 용]
주둥이에 있는 두 개의 구멍으로 적외선을 탐지하는 방울뱀은 캄캄한 밤에도 생쥐를 타오르는 횃불처럼 선명하게 인지한다. 열 추적 미사일과 다를 게 없다. 이산화탄소로 피를 빨 대상의 위치를 추적하는 모기는 어둠이 반갑기만 하다. 새와 벌은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자외선으로 사물을 인지한다.

인간의 감각이 끝나는 지점에서도 다른 동물은 고주파 소리를 듣거나 미미한 진동을 느끼고 색깔도 볼 수 있다. 감각은 생물학과 물리학이 만나는 접점이다. 지은이는 종에 따라 다른 감각이 ‘우월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감각은 다양한 생물이 경쟁하고 공존하는 장을 제공한다. 상어와 가오리는 주로 머리에 몰린 로렌치니 평대부라고 하는 작은 구멍을 통해 다른 생물이 만드는 미세한 전기장을 탐지한다. 돌고래는 수중음파탐지기를 사용해 모래에 숨은 대상까지 찾아내는데, 공기가 채워진 부레의 모양을 파악해 서로 다른 물고기를 구별한다. 먹잇감을 입맛에 맞춰 고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무당개미는 거미줄에서 나는 진동으로 주변을 감지한다. 더부살이개미는 이 진동을 해킹해 더부살이에 나선다.

개는 인간과 좀 다르게 색깔을 본다. 사진은 개의 이색형 색각을 모델링했다. [사진 에드 용]
원숭이올빼미는 기어 다니는 설치류 소리를, 기생파리인 오르미아는 귀뚜라미의 구애 소리를 듣고 찾아 나선다. 소리로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정확한 위치까지 파악한다. 살기 위해 내는 소리가 때론 위험을 부를 수도 있다.

뛰어난 감각은 소통과 이동에도 유용하다. 거대 포유류인 대왕고래와 아시아코끼리는 초저주파 울음소리로 장거리 통신을 할 수 있다. 바다가 더 조용하다면 대왕고래의 울음은 대양을 가로지를 수도 있다고 한다. 보광나방·유럽울새·붉은바다거북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장거리를 이동한다.

감각은 짝짓기의 매개 노릇도 한다. 수컷 퉁가라개구리는 암컷 개구리가 잘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도록 특화됐다. 야행성 땀벌은 짙은 어둠 속에서 정글 속의 작은 둥지를 찾아낸다. 어둠 속에서 노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맛의 세계는 더욱 경이롭다. 맛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꽃에 앉은 나비는 부지런히 발을 비빈다. 잘못을 비는 장면이 아니라, 발에 있는 수용체로 먹이의 맛을 보는 모습이다. 물속의 메기는 온몸으로 맛을 본다. 피부 전체에 맛을 보는 미뢰(맛봉오리)가 분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엄치는 혀’로 불린다.

동물의 초감각을 보고만 있을 인간이 아니다. 일부 동물의 감각을 역설계해 유용한 발명품을 쏟아내고 있다. 소리 나는 방향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데 탁월한 기생파리의 귀는 보청기에, 초음파를 쏜 뒤 돌아오는 반사음으로 먼 곳의 상황을 파악하는 돌고래의 방향정위 능력은 군용음파탐지기에 각각 쓰인다.

바닷가재의 눈은 거울처럼 작동하는 수천 개의 관으로 이뤄져 머리를 돌리지 않고도 거의 모든 방향에서 오는 빛을 파악할 수 있다. 천적의 접근을 신속하게 파악해 생존력을 높인다. 천문우주 과학자들은 이러한 생물학적 발견을 활용해 우주망원경을 개발하고 개량했다. 바닷가재의 눈이 인류가 더욱 효율적으로 우주를 관찰하도록 도왔으니 경이가 따로 없다.

지은이는 인간이 내는 과도한 소음과 불빛이 지금까지 감각 균형을 이뤄온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려한다. 여러 날곤충은 가로등을 천체의 빛으로 착각해 다가왔다가 탈진하기 일쑤다. 매년 9월 11일 뉴욕시는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서 두 개의 강렬한 빛기둥을 하늘로 쏜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설치미술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7일 밤 동안 이어지는 이 연례행사가 110만 마리의 새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전문 연구자를 인용해 지적한다.

새들은 빛에 이끌려 몰려드는 것은 물론 지칠 때까지 맴돌거나 인근 건물에 부딪히기도 한다. 항공기 조종사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통신탑의 파란 불빛도 마찬가지. 지은이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공존하기 위한 지혜를 발휘할 때라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에서 활동 중인 과학저널리스트. 코로나19 보도로 2021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원제 An Immense World.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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