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 IT·유통 혁신의 힘, 새우 양식 연 매출 200억 넘봐…잘나가던 금융맨 관두고 귀촌도 [불황에 늘어나는 귀농·귀어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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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우리 협동조합에 소속된 젊은 귀어(歸漁)인들의 1년 뒤 소득은 연 평균 1억2000만원가량 될 겁니다. 올 때는 소형차를 타고 왔다가 최근엔 제네시스를 타고다니는 분들도 많이 보여요.”
전남 고흥군에 위치한 육상 시설하우스에서 새우양식장을 운영 중인 이상춘(59) 고흥수산 대표는 최근 귀농·귀촌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조선업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다 조선 불황에 농촌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이 대표는 첫해부터 4년간 5억원가량 적자가 났다. 그러나 2020년 처음으로 4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뒤 지난해엔 16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지금은 협동조합(고흥수산영어조합법인)을 운영하며 대지 면적 6만6000㎡(약 2만평) 규모의 육상 해수양식장에서 연간 300t의 새우를 양식하고 있다. 이렇게 키운 새우는 자체 온라인 판매 사이트와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팔려나간다. 다음달부터는 롯데마트 163개 매장과 전속 판매 계약을 통해 전국으로 팔려나갈 예정이다.
귀어 1년 만에 수익, 억대 농·어부 늘어
요즘같은 경기 불황에도 ‘억대 연봉’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에 이 대표의 양식장은 젊은 귀어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이 대표는 이렇게 몰려든 30여명의 귀어인들과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한다. 여기선 도시 생활에 지치고, 경기 불황을 피해 농촌을 찾는 사람들은 물론, 전도유망한 직업을 버리고 귀어한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대표를 멘토로 여기고 귀어협동조합에서 관리부장을 맡고 있는 조창민(49) 에코수산 대표가 대표적이다. 조 대표는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던 금융맨 출신으로 2021년 9월 귀어해 1년여만에 수익을 냈다. 조 대표는 “벤처 투자 업무를 하다보니 일반적인 투자처보다 양식이나 생산, 농산물, 수산물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불황이라곤 하지만 이전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농·수산물 생산과 유통에서 비전을 보고 귀어한 것”이라고 말했다.
식량 생산이 유망 투자 분야란 얘기는 수십년간 반복된 구문(舊聞)이다. 경기 침체로 도시 생활에 어려움이 커질 때마다 귀농·귀촌 붐이 일었다. 그 만큼 수많은 실패 사례도 쌓였다. 그러나 최근엔 이런 추세에 변화가 감지된다. 기술의 발전이 농촌 창업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지난 10일 경남 하동군 옥종면 법대리의 한 대추방울토마토 재배농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배병수(44) 대표도 ‘푸드테크’에 힘 입어 귀농에 성공한 사례다.
선박 가공 등 조선업에서 5년가량 사업체를 운영했던 배 대표는 2017년 조선업이 침체에 빠지자 사업을 접고 귀농했다. 배 대표는 “먹고 살 게 없으면 농사나 지으러 가야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귀농 첫해 배 대표의 농장에선 냉해로 토마토가 모두 얼어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뒤 친환경 토마토를 재배하기도 했으나 판로가 마땅치 않아 손해가 막심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하우스 8동, 1헥타르(ha, 약 3000평) 규모의 대추방울토마토 농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스테비아 대추방울토마토’ 덕분이다.
작년 전체 창업기업 수는 7% 줄어
이렇게 성공 사례가 늘면서 귀농·귀어를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정성문 농림축산식품부 사무관은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쉽게 알려지지 않았던 귀농·귀어 성공사례가 퍼진 것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한다”며 “예컨대 과거에는 농업이라고 하면 땡볕에 파종하고 수확하는 것을 떠올렸지만 청년층에선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색다른 방식으로 농업에 도전할 수 있다는 데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경기 불황 속 창업 심리 위축도 거스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중기부 창업기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농·임·어업 및 광업 창업은 전년 대비 12.9% 증가했다. 전체 창업기업수는 7.1% 역성장했으나 도시를 떠나 농·임·어업 등에서 창업한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귀농 동기다. 30대 이하 청년층에선 ‘농업의 비전 및 발전 가능성을 보고 귀농했다’는 응답이 최근 5년 동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청년농육성정책팀장은 “50대 이상은 ‘자연 환경이 좋아서’ 귀농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해 청년들은 유망한 직업으로 농업을 선택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농촌 창업을 선택한 귀농·귀어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대다수가 첫 손가락에 꼽는 것은 판로 확보다. 판로를 확보해야 비로소 안정적인 소득 구조가 마련되고 농촌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로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거주하고 있던 주변 농가와의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소득 부족과 주변 농가와의 갈등은 농촌에서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역(逆)귀농’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농촌진흥청 장기추적 조사에서 집계된 역귀농률은 8.6%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농촌으로 이주 등을 포함하면 귀농 가구의 30% 가량은 첫 귀농지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벼농사 외면, 전통 농업 한계 여전
수도권에서 직장을 다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 대표 역시 귀농 초기 최대 고민은 판로 확보였다. 김 대표는 “상추 같은 수확물은 인근 유통망을 활용해 판매하는데 매대가 한정적이다 보니 인근 농가들끼리 경쟁해야되는 상황이 계속 벌어졌다”며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나서 보니 아버지 친구 분이셨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귀농 후 인근 농민들과 갈등을 피하고 싶어도 생존 경쟁을 벌이다 보면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겪던 김 대표는 이커머스를 통한 판로 개척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쿠팡에 입점하면서 더 이상 인근 농가와 경쟁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공판장에 내다 팔 때엔 부담하지 않았던 판매 수수료가 발생하지만, 공판장에서 인근 농가와 경쟁하며 제값을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이익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불황 속에 귀농·귀촌 증가의 이면에 담긴 젊은층의 인식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젊은층들의 인식 변화에 기술의 발전이 더해져 농촌이 삶을 공유하는 흥미로운 공간으로 재탄생되고 있다는 얘기다. 김대식 충남대 농업생명과학대학장은 “도시와 농촌간 접근성이 개선되고, 소셜미디어가 생활화되면서 사람들과 떨어져 소외되지 않았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되는 등 정보기술(IT) 발전의 역할이 눈부시다”며 “여기에 돈벌이와 출세보다 자유로운 삶을 중요시하는 가치가 확산되며 농촌도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황건강·신수민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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