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새끼 얼룩말의 반항은 귀엽지 않다

김나현 2023. 4. 1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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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야, 앞으로는 반항 말고 착하게 지내."

가족 나들이 인파로 북적인 동물원에서 단연 인기를 독차지한 곳은 지난달 탈출 대소동을 벌인 얼룩말 '세로'의 우리 앞이었다.

온라인에는 '옆집 캥거루와 다툰 초식마을의 반항아' '봄소풍 나온 세로' '도심에서 만끽한 자유' 등의 목격담이 쏟아졌다.

그리고 돌아온 세로 곁에서 우리 인간은 다시금 세로의 '반항'을 소환하며 그의 '안정'을 방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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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야, 앞으로는 반항 말고 착하게 지내.”

지난 주말 정오 무렵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을 찾았다. 가족 나들이 인파로 북적인 동물원에서 단연 인기를 독차지한 곳은 지난달 탈출 대소동을 벌인 얼룩말 ‘세로’의 우리 앞이었다. 울타리 앞 보행로는 차단된 상태였지만, 세로를 멀리서라도 보겠다는 사람들이 바깥쪽으로 몰려들었다. 꼬마들은 앞다퉈 세로를 불렀고, 어른들은 틈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세로를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그 옆으로 ‘얼룩말 세로는 내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안내판이 힘없이 흔들렸다. 세로는 두 귀를 바짝 세운 채 허공을 응시했다.
김나현 사회부 기자
두 살짜리 수컷 얼룩말 세로는 지난달 23일 목재 울타리를 부수고 인근 도로와 주택가를 돌아다니다 3시간 만에 생포됐다. 온라인에는 ‘옆집 캥거루와 다툰 초식마을의 반항아’ ‘봄소풍 나온 세로’ ‘도심에서 만끽한 자유’ 등의 목격담이 쏟아졌다. 처음 소식을 접하고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오후의 평화를 깨는 희대의 반항아라는 생각에 “귀엽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나를 보며 한 동료가 예상 밖의 한마디를 던졌다. “이건 슬픈 일인데.” 그 순간 이야기의 장르는 예능에서 다큐로 바뀌었다. 새로운 전개 속에서 한발 떨어져 바라본 세로는 ‘귀엽지 않았다’. 부모 잃고 혼자가 된 떼 지어 사는 무리 동물. 인간의 관리 부실로 아스팔트 도로 위를 정처 없이 떠돌게 된 시속 64㎞의 질주 본능. 그의 탈출에 붙은 ‘귀여운 반항’이라는 수식어는 얼룩말의 습성을 철저히 지우고, 인간의 시선을 덧씌운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세로 곁에서 우리 인간은 다시금 세로의 ‘반항’을 소환하며 그의 ‘안정’을 방해하고 있었다.

동물원의 좁은 철창, 기존 서식지와 다른 기후 환경은 동물의 야생적 습성을 거세한다. 동물원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도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동물을 자연으로 무작정 방출시키자는 것도 퍽 게으른 논리다. 17년 동안 수족관에 갇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원됐던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는 지난해 10월 바다로 방류됐다가 반년째 소식이 끊겼다. 사실상 폐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비봉이 방류 계획은 지난해 8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창 인기를 끌 때 발표됐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해당 드라마를 언급하며 방류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당시 동물단체는 비봉이가 어린 나이에 포획돼 야생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성급한 단독 방류보다는 야생 적응 훈련과 짝을 지은 방류 등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결국 비봉이는 홀로 방류됐고, 사라졌다.

혼란한 도심 속 세로가 느꼈을 까마득함을 우리가 온전히 상상할 수 있을까. 끝 모를 심해에서 비봉이가 겪었을 아득한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다만 동물이 최소한의 습성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모두를 위한 동물원’, 동물이 안전하게 돌아갈 ‘자연 생태계’에 대해선 그려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날 때 가능하다. 지금도 초원과 정글이 사라진 자리는 밀렵꾼들로 득실대고, 바닷속에는 인간이 배출한 미세플라스틱이 차곡히 쌓여간다. 한 발짝 양보도 없이 모두를 위한 내일이 찾아올 리 없다.

김나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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