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삶이 우릴 때려눕힌다고 느낄 때
있는 힘 모아 땅 밀고 일어서야 희망
제임스 설터 「20분」(‘아메리칸 급행열차’에 수록, 서창렬 옮김, 마음산책)
“나는 언젠가 한 파티에서 그녀를 만났다”로 이어지는 단편 「20분」은 그 파티에서 만난 그녀가 나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벌어진 20분,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던 그 운명의 시간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다.
일과가 끝난 늦은 오후, 이미 어두워지는 무렵에 제인 베어는 말을 타고 혼자 산등성이에 올랐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리 영리하지도 않고 걸을 때 가끔 비틀거리는 말에게도 그 길은 익숙했다. 그녀와 말은 배수로를 따라 문을 향해 나갔고 그들은 언제나 그 문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뭔가를 포기하고 멈췄다. 순식간에 그녀는 말의 머리 위로 튕겨 나갔다. 땅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무릎으로 슬로모션처럼 말이 곤두박질쳤다. 그녀의 몸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정신은 알고 있었다. 20분. 사람들이 늘 그렇게 말한 시간. 20분 안에 구조되지 못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없을 거였다. 이웃들의 집은 멀었고 도로를 오가는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 곁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은 안장을 차고 있으므로 누군가 말을 본다면 그녀를 구조하러 올 텐데.
도와주세요! 소리를 지르고 기도를 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손쉽게 할 수 있었던 일들과 하고자 했던 수없이 많은 일이 떠올랐다. 지금 이렇게 자신이 땅바닥에 팽개쳐질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순간들. 이제 그녀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인생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줄 알았던 아버지. “삶은 우릴 때려눕히고 우린 다시 일어나는 거야. 그게 전부야.” 그녀는 손바닥으로 땅을 밀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급행열차』의 서문을 쓴 편집자는 이 단편에 대해 20분 안에 한 사람의 전 인생을 드러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매번 이 단편으로 돌아가곤 한다는 찬사를 덧붙였다.
어느 한순간,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삶이 나를 때려눕히려고 할 때. 천천히, 있는 힘을 끌어모아 손바닥으로 땅을 밀어본다. 안전한 방향 쪽으로. 신이 있고 세상엔 어떤 미덕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 게 그때는 진짜 도움이 될지 모른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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