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기본 ‘가족’ “폐지를” 도발적 주장[책과 삶]
가족을 폐지하라
소피 루이스 지음·성원 옮김
서해문집 | 184쪽 | 1만4800원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정부는 시민에게 “자택에 머물고 외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가격리가 가능한 집이 없거나 돌봐줄 가족이 없는 ‘취약계층’은 방역 시스템 밖으로 밀려났다. 의료·주택·교육·사법·연금 등 현대 사회 제도 대부분이 가족을 기본 단위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 소피 루이스는 <가족을 폐지하라>에서 “가족의 가장 근원적인 특성은 돌봄을 사적인 영역에 가둔다는 것”이라며 “사유화 수단인 가족을 집단적으로 놓아버려야만 진정으로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루이스는 가족 제도가 자본주의, 가부장제, 이성애 중심 사회를 유지시킨다고 비판한다. 루이스는 다른 책에서 ‘완전한 대리모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족 안에선 때로 폭력이 은폐된다. 한국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사건은 2019년 116건, 2020년 118건, 2021년 143건으로 증가 추세이다. 드러나지 않은 사건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가족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도발적이지만 오래된 생각이다. 루이스는 가족을 사유재산 유지 수단이라고 비판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사회적 사랑을 주장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혁명적 페미니즘을 주장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등을 소개한다.
이 책은 일종의 사고 실험이자 격문이다. 루이스는 모든 사람이 서로의 돌봄을 받는 사회를 요구한다. 하지만 가족을 폐지한 사회의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지는 못한다. 루이스는 “나는 혈연에 대한 욕구가 돌봄 욕구를 가능케 한다고 분명히 안다”면서도 “우리가 손을 맞잡으면 분명 가족 이후에 찾아올 ‘아무것도 없음’의 풍요 속으로 용감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적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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