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청탁자에 “송영길한테 전화 한 통 해보라 안 했겠나”
“난 송영길 측근…공천은 따놓아”
여러 차례 자칭 ‘로비스트’로 소개
송영길 포함 수사 확대 시간문제
검찰, 뒷받침할 물증 확보가 관건
검찰이 수사 중인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불법 정치자금 의혹의 핵심 단초인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사진)에 대해 법원이 ‘로비스트, 정치브로커’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판결문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비스트를 자처한 이 전 부총장은 스스로 “송영길 측근이라 공천은 따놓은 것”이라고 자신하는 등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언급을 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 전 부총장은 2021년 전당대회에서 송 전 대표가 당대표에 오른 직후 부총장에 임명됐으며, 이듬해 3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서울 서초갑 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전당대회 당시 송 전 대표 캠프에서 뛴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칼끝이 곧바로 송 전 대표 쪽으로 향할 수 있어 민주당 전·현직 대표가 수사·재판을 동시에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가 지난 12일 이 전 부총장의 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한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이 송 전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과의 관계를 내세워 청탁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돈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2019년 12월 사업가 박모씨에게 ‘나는 유력 정치인 송영길 국회의원의 측근이다. 송영길이 곧 당의 주도적 위치로 갈 것이니 21대 총선에서 서초구 공천은 따놓은 것과 다름없다’고 한 것으로 파악했다. 2021년 11월 박씨의 청탁 해결 요구에 대해 이 전 부총장이 ‘(내가) 우리 송영길 대표한테도 ○○한테 전화 한 통만 해봐(라고) 안 했겠느냐’고 답한 내용도 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이 여러 차례 자신의 역할을 ‘로비스트’로 규정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 전 부총장이 박씨에게 2020년 ‘내가 로비는 잘하니까 사업이나 배울까봐요’ ‘나는 체질이 로비스트’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판결문에는 전당대회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받은 이성만 의원과 강래구 한국감사협회 회장(당시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도 등장한다.
판결문에 인용된 2020년 7월 대화에는 이 전 부총장이 “이성만 의원 있잖아. 내가 (후원금으로) 100만원 보냈어. 나 오빠한테 지금 3000만원 받아가지고 막 쓰고 있어”라고 박씨에게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전 부총장이 “수자원공사 걔(강래구)는 그런 걸 좋아하는 애라 그랬잖아. 만나서 얘기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대목도 있다. 박씨는 ‘강 전 감사가 돈을 좋아한다는 의미’라고 증언했다. 이때 박씨가 이 전 부총장에게 1500만원을 줬다고 재판부는 인정했다. 이 전 부총장과 민주당 인사들 수십명이 긴밀히 얽혀 있고 돈도 오갔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수사 범위 확대는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검찰은 전당대회 관련 압수수색 영장에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송영길 당대표 경선캠프’ 지역본부장 등에게 흘러간 현금 액수를 9400만원으로 특정했다. 현역 의원만 10~20명, 지역본부장과 지역상황실장은 수십명이 돈을 받았다고 했다.
다만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녹음파일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과 추가 진술을 확보하는 게 수사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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