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내부 유출 드러나자…슬그머니 “도청 알 수 없다”는 정부

김유진 기자 2023. 4. 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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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자 “확정할 근거는 없다”…미 조사 결과 뒤 ‘조치’ 강조
미국의 도청 가능성 부인 안 하면서도 여전히 “악의 없었다”

미국 국방부 기밀문서 유출이 내부자의 소행임이 명확히 드러난 13일(현지시간)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정부도 (미국이 도·감청을 하지 않았다고) 확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용산 대통령실 도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 “문서 상당수가 위조됐다”며 모든 가능성을 강경하게 일축하던 기존의 입장에서 말을 바꾼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현재 사건을 조사 중이라며 지금으로선 도청을 했다고 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도청 의혹 당사자인 미국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도청을 하지 않았다고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도청이 없었다고 정부가 확정하는 것은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질문에 “정부도 확정하지 않았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며 “우리도 아직 (도·감청 여부를) 알 수 없다.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 수사당국이 주방위군 소속 군인을 기밀문건 유출 혐의로 체포하면서 정부의 ‘문서 위조설’이 설득력을 잃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앞으로 미국이 (조사를 통해) 알아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유출 당사국인 미국조차 문건의 진위에 대해 언급을 조심스러워하는 상황에서,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단언했던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앞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1일 방미를 위해 출국하기 전 기자들을 만나 “도청 의혹 관련, 미국 쪽에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없다. 왜냐면 누군가가 위조한 것이니까”라고 확언한 바 있다. 이를 두고 가디언 등 외신들은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유출 문건의 중요성을 한국 정부가 축소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고위 당국자는 문서의 위조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 지금도 일단 미국의 조사 결과가 나와야 그에 따라 조치할 수 있다면서, 미국의 악의적 행동이 없었던 것으로 간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 김 1차장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악의적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미국이 안 한 것 같다는 뜻”이라며 “의도와 달리 보도된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도청이 없었다는 의미인가”라고 묻자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 정보 활동을 할 수 있는 개연성은 어느 나라나 있다. 우리도 그런 활동을 안 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현재까지 도청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므로, 악의적 행동이 없었던 것으로 간주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 같은 판단의 근거가 한국 정부의 자체적 판단인지 미국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결과인지를 묻자 “미국은 조사가 끝난 뒤 확실히 설명할 것이고, 우리는 지금도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어떤 것도 확정해서 미국의 행동이라고 드러난 게 없다”고 말했다.

이번 기밀문건 유출 사태에 대한 미국 측 반응과 관련해선 “제가 만난 (미측) 상대방은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굉장히 곤혹스러워하고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최선을 다해 중간중간에 공유하겠다고 했고, 동맹으로서 자기들이 큰 누를 범한 것 같은데 오해가 없길 바란다는 성의 있는 말을 해왔다”고 했다. 그는 미국 측 반응에 어떻게 대답했느냐고 묻자 “조사가 끝나야 서로 평가하고 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일단 미국 측의 입장 표명에) 고맙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곤혹스러워하는 것이 도청을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사실관계를 떠나 동맹이 훼손될 수 있는 여러 오해가 난무하고,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우리 대통령을 모시겠다고 국빈 초청했는데 한국에서 왈가왈부하는 분위기가 있으니 미국은 그게 곤혹스럽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당국자는 이달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이버안보 협력 강화를 다짐하는 별도의 문건이 발표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북핵 의제와 관련해서는 “한·미 국민의 피부에 와닿을 종합적인 한·미 확장억제력의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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