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본적 없는 유출자… 그가 원한 건 정의 아닌 허세였다
게임 채팅방서 10대들에게 과시
지난 한 주 글로벌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던 미국 정보 당국의 기밀문서 유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21세 미 병사로 13일(현지 시각) 밝혀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최근 유포된 기밀문서를 최초 유출한 혐의로 매사추세츠주(州) 주 방위 공군 소속 잭 더글러스 테세이라(Teixeira) 일병을 이날 체포했다.
미 정부의 기밀문서가 불법으로 유포된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범인은 정부의 잘못된 행태를 까발려 바로잡고자 하는 정의감 넘치는 내부고발자였지 소셜미디어 과시용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테세이라를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라고는 부를 수 없어 보인다. 이번 사건은 10대들에게 뽐내기 위해 기밀문서를 유출한 거의 첫 사례”라고 전했다.
문제가 된 기밀 문건은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 처음 등장한 후 텔레그램·트위터 등 다른 메신저와 소셜미디어로 퍼져 나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전황과 미국이 한국·이스라엘 등 동맹국 정부를 도청해 파악한 내용이 담겨 큰 논란이 일었다. 이날 체포된 테세이라는 디스코드의 게임 채팅방 중 하나인 ‘서그 셰이커 센트럴(Thug Shaker Central)’에서 활동하면서 20~30명의 모임원에게 지난 몇 달간 최소 100건 이상의 기밀 문건을 유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유출자를 추적해온 FBI는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약 80㎞ 떨어진 노스다이턴의 모친 집에서 이날 테세이라를 체포했다.
2019년 9월 주 방위군에 입대한 테세이라는 지난해 7월에야 말단 병사에서 일병으로 승진했다. 사이버 시스템 관련 업무를 맡았던 그는 이후 광범위한 기밀문서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추정된다. 그는 애초엔 자신이 본 정보를 채팅방에 글로 써서 돌리다가 ‘채팅방 친구들’이 이런 기밀 정보에 열광하자 문서를 아예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전쟁 게임에 열광하는 10대들에게 테세이라가 진짜 전쟁의 맛을 보여준 셈”이라고 전했다.
그가 유출한 사진 속 문서는 대부분 꼬깃꼬깃하게 접혔고, 배경에 방의 전경이 그대로 보이는 등 허술한 점이 많았다. NYT에 따르면 FBI는 처음 문건이 등장한 ‘서그 셰이커 센트럴’에 대한 정보와 다른 여러 단서를 추적해 테세이라를 체포했다. WP는 “테세이라의 체포로 사법 당국과 ‘인터넷 탐정’들이 한 주 동안 풀려던 미스터리가 풀렸다”고 전했다. 온라인에 게시된 사진의 배경엔 ‘고릴라 글루’ 접착제, 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 모자, 사냥 잡지 등이 그대로 보여 화제가 됐는데 테세이라의 집을 조사한 결과 같은 물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메릭 갈런드 미 법무장관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테세이라의 혐의를 ‘기밀 국방 정보의 미승인 반출·보유·전송’이라고 밝혔다. 위반 행위 한 건당 최대 1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혐의들이다. 유죄 확정 시 수백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
미국에선 때때로 신념을 앞세운 내부고발자의 기밀문서 폭로가 발생해 큰 반향을 일으켜 왔다. 1971년 국방부 소속 국방 전문가가 NYT 기자에게 베트남전 관련 국방부 문건을 유출한 ‘펜타곤 페이퍼’ 사건은 미국에서 반(反)베트남전 운동을 번지게 한 계기가 됐다. 2010년 미군 기밀을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보낸 당시 육군 일병 브래들리 매닝(성 전환 수술 후 첼시 매닝으로 개명)은 아프가니스탄전·이라크전 등과 관련한 기밀문서를 국방부 전산망에서 빼돌려 유포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의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PRISM)’을 폭로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 등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미국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논란이 커졌다.
☞서그 셰이커 (Thug Shaker)
흑인들이 주로 추는 춤 동작의 하나. 2020년 나온 한 동성 간 성인물에 백인 남성이 흑인 건달(thug)에게 ‘바지 벗고 엉덩이를 흔들라(shaker)’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패러디한 영상이 온라인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서 특히 인기를 끌며 ‘서그 셰이커’라고 불렸다. 백인 우월주의적 색채를 띠었다고 여겨지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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