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스 하던 MZ세대, “거지”를 외치다
‘짠테크’ 공유와 놀이 문화 결합
“아이스크림 사?” “500원짜리만”
“불황 속 절약으로 연대감” 분석
14일 오전 10시25분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190여명이 참여한 단체 대화방 ‘거지방’에서였다.
“편의점 -6900원. 담배랑 녹차 좀 샀습니다.” 아이디(ID) ‘거지OO’가 지출 내역을 올리자 답장이 주르륵 올라왔다. “녹차를 키우세요.” “키운 녹차잎 말아서 불붙여 쓰세요.”
개인의 소비·지출 내역을 메신저상에서 공유하고 평가를 주고받는 이른바 ‘거지방’이 유행이다. 20~30대 청년층이 대다수인 ‘거지방’ 접속자들은 과도한 지출을 막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기본 규칙은 한 달 목표 생활비를 정해 두고, 지출 내역을 공유하는 것이다. 돈을 절약하는 방법을 공유하거나, 물건을 사기 전 다른 사람들의 허락을 받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경제 불황과 고물가 시대에 흔히 나타나는 ‘짠테크’(짠돌이+재테크)가 요즘 청년들의 ‘놀이 문화’와 결합하면서 신종 트렌드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이날 기준 오픈 카카오톡 채널에 ‘거지방’을 검색하면 200개가 넘는 방이 나온다. 몇몇 방은 이미 300명 정원이 가득 차 입장조차 할 수 없었다. 이들 방은 ‘재테크’ ‘절약’ ‘구두쇠’ ‘지출기록’ 등의 키워드로 해시태그를 걸어놓았다. 방 입장 ID는 주로 지출 목표와 하루 지출 총액으로 설정돼 있었다.
이들 ‘거지방’ 가운데 한 곳에 들어가 봤더니 곧바로 한 참가자가 “아이스크림 지출 가능한가요? 할인점에서 구매 예정”이라며 멤버들에게 구매 승인을 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자 “얼음 드세요” “500원짜리만” “콘아이스크림 드시면 안 돼요” 식으로 지출을 말리는 답이 돌아왔다. 매운 라면 지출 승인이 반려되자 “상사가 2시간 동안 광견병 걸린 개처럼 ××했다”고 항변해 허락을 받아낸 사람도 있었다.
지출을 아끼는 노하우나 정보도 이 방에서 공유된다. 특정 기업에서 이벤트로 기프티콘(모바일 상품권)을 나눠주는 행사를 한다든지, 옷에 묻은 페인트는 세탁소 갈 필요 없이 물파스를 이용해 지우면 된다는 정보가 올라왔다. “회사 얼음·물 횡령 0원” “학식 6900원인데 아빠 카드 씀” “내일 식비는 룸메이트의 식량 창고 터는 거로 대체하겠다” 등 ‘기생식’으로 절약한 사연을 자랑하는 글도 올라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자신을 지칭할 때 ‘거지’라는 말을 기피한다. 하지만 청년들은 솔직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지출을 아끼는 게 사실은 힘든 일이지만, ‘거지방’에서는 절약을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애환을 나누고 연대 의식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거지방 놀이’가 청년 문화의 다층적 측면이나 시대에 따른 변화상을 보여준다는 견해도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돈 자랑이나 과시를 의미하는 ‘플렉스 문화’가 크게 유행했는데 이와 정반대되는 ‘짠테크 놀이’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거지방에는 불특정 다수의 온라인 사용자가 들어오다 보니 혐오, 음란 메시지도 올라올 수 있어 필터링이 필요하다”며 “절약 정보를 가장한 출처 모를 링크도 올라올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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