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아 흘돋체∙온담체’ 만든 홍익대 디자이너들 “우리 글꼴, 방송에서 볼때마다 뿌듯”
2023. 4. 14. 20:40
영상이나 음악을 활용한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글자’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아무리 영상미가 뛰어난 콘텐츠라고 해도, 함께하는 글자의 모양이 어색하면 콘텐츠 전체의 완성도가 떨어져 보인다. 발표자료나 보고서 역시 마찬가지로, 어떤 글꼴(폰트)를 적용했는지에 따라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문서가 구분된다고 할 정도다.
좋은 글꼴을 확보하고 각 콘텐츠에 적절하게 적용하는 능력은 해당 개인이나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글꼴이나 마구 이용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상당수 글꼴은 유료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이용해 상업적 콘텐츠를 만들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반면, 상업용을 포함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무료 글꼴도 있다. 일부 기업이나 단체는 기업 이미지 제고 및 고객 서비스의 일환으로 이런 무료 글꼴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한다. 웹 호스팅 및 클라우드 인프라 전문 기업인 가비아(대표 김홍국)가 대표적인 경우다.
가비아는 2015년 국민대학교와 협업, ‘솔미체’, ‘납작블럭체’, ‘봄바람체’를 개발해 무료 배포한 바 있다. 이후에는 홍익대학교와 협업하며 2022년 ‘마음결체’와 ‘청연체’를, 그리고 올해 3월에는 ‘흘돋체’와 ‘온담체’를 선보였다.
글꼴 한 벌을 제작한다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한글 및 영문, 기호 등이 조합된 수 천개 이상의 글자를 체크해야 하며, 끊임없는 시행착오 및 수정 작업을 거쳐야 한다. 취재진은 홍익대 디자인학부를 방문, 이번 2023년 글꼴 프로젝트에 참여한 홍익대 출신의 ‘정영훈’, '김락현’, 그리고 ‘양효정’씨를 만났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번 프로젝트 및 글꼴 제작의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 이번 프로젝트에서 담담한 역할은? 간단한 자기 소개도 부탁합니다
정영훈: 박사 학위 취득 후 현재는 대학 강의 활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타이포그래피 방법론을 포함한 글자 연구를 시작한 건 석사 학위를 준비하던 10여년 전부터죠. 이전 가비아 협업 프로젝트에선 기획 및 관리를 담당했는데 이번에는 ‘가비아 흘돋체’를 직접 그리는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김락현: 작년에 졸업했으며 현재는 AI 스타트업에서 B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학 당시 교내 타이포그래피 소모임에서 활동할 정도로 글자에 관심이 많았고, 안병학 교수님의 권유도 있어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 ‘가비아 온담체’ 글자를 제작했습니다.
양효정: 학교는 올해 졸업했고 지금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일정 관리 및 방향성 체크, 의견 조율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했습니다. 가비아와의 협업 프로젝트는 지난번에 이어 두번째 참여입니다.
- 이번 글꼴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정영훈: 타이포그래피 분야의 권위자인 안병학 지도교수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혼자 글자 그리는 건 좋아했지만 이런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을 넘어 대중들이 행복하게 쓸 수 있는 글꼴을 제공한다는 각오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죠. 실제로 해보니 개인적으로 몇 자 만들어보는 것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작업량이 많았고 방향성도 잡기 힘들었습니다.
김락현: 양효정 매니저와는 전부터 인연이 있었고, 제가 평상시에 글자를 종종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졸업 전시회를 준비해야 해서 이번 프로젝트 참여를 할지 다소 고민하기도 했지요. 한 벌의 온전한 글꼴을 만들어 본 경험은 없었고, 팀원 간의 협업도 해야 하니 말이죠.
양효정: 저도 안병학 교수님과 함께 글자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상 시 연구주제로 글꼴을 다루기도 했고요. 가비아의 이런 프로젝트가 우리 팀의 역량을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참여했습니다.
- ‘가비아 흘돋체’와 ‘가비아 온담체’를 제작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요소는 무엇입니까?
정영훈: 가비아 흘돋체는 기존에 익히 알려진 ‘돋움체’를 기반으로 하면서 좀 더 부드러운 손글씨의 느낌을 넣고자 했습니다. 기존 돋움체는 본문 보다는 주로 소제목이나 제목에 많이 쓰이곤 했는데, 가비아 흘돋체는 본문에서 더 많이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눈에 부담도 적고 읽기 편한 글꼴입니다.
김락현: 저는 리릭 비디오(가사로 이루어진 뮤직 비디오)에 적합한 글꼴이 무엇일지 생각하며 가비아 온담체의 제작에 임했습니다. 리릭 비디오 가사에 고딕 계열 글꼴을 쓰면 너무 딱딱한 느낌을 주고, 흘림 계열 글꼴은 너무 진중합니다. 그 중간 지점을 만들고자 했는데, 고딕체에 가깝지만 흘림체의 특성도 넣고자 했습니다. 가비아 온담체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특히 그 중에서도 서정적인 시나 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글꼴이라고 생각합니다.
-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려웠던 점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나요?
정영훈: 앞서 말한 것처럼 가비아 흘돋체는 돋움체의 골격을 가지면서도 부드러운 미적 감각을 더한 것이 특징입니다. 때문에 어떤 지점에서 부드러움을 도드라지게 할지를 고민했지요. ‘적당함’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글자 하나만 봐선 그럴 듯한데 여러 글자가 다발로 묶이면 이상해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팀원들과 소통하고 지도교수님의 조언을 받기도 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김락현: 글자 몇 개만 만들어보다가 본격적으로 수 천자에 달하는 글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글자는 미려한데 또 어떤 글자는 그렇지 않기도 했습니다. 정말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떤 부분은 타협하기도 하면서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양효정: 프로젝트가 1년 단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각 작업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 프로젝트에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 홍익대와 가비아는 이전에도 이러한 글꼴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꾸준히 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비아와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까?
양효정: 가비아 글꼴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은 2015년에 발표되었는데, 그 때는 국민대학교와의 협업이었죠. 2022년 프로젝트부터는 홍익대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가비아의 글꼴 프로젝트는 누구나 IT의 혜택을 손쉽게 누리게 한다는 회사의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글꼴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본격적인 개발 경험을 주고자 했던 우리의 의도도 만족시킬 수 있었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가비아 측에서는 우리를 믿고 대부분의 작업을 맡겼습니다. 소정의 프로젝트 비용도 제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치 하청업체 부리듯 간섭하지도 않았죠. 프로젝트 결과물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배포하고 각종 홍보를 해준 점도 우리 디자이너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 이러한 협업 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참여한 소감은?
정영훈: 개인적으론 처음으로 이렇게 온전한 글꼴 한 벌을 다 만들어본 것에 큰 의의를 둡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이런 것을 선보일 기회가 주어져서 이에 따른 사명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비아 입장에서도 결과물이 미흡하면 기업 이미지가 저하될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리스크를 안고 시작한 프로젝트일 텐데, 다행히 결과물이 잘 나와 만족합니다.
김락현: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 이렇게 본격적인 글꼴 제작 작업에 참여할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작년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글꼴 2종은 이미 유명 웹툰 서비스나 공중파 드라마, 유명 가수의 콘서트 등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데, 정말 뿌듯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물도 널리 쓰였으면 합니다.
양효정: 단순히 글꼴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한글 글꼴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는 프로젝트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프로젝트가 이어져 ‘믿고 쓰는 가비아-홍익대 글꼴’ 같은 이미지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 추가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정영훈: 타이포그래피 분야의 발전과 더불어 글꼴 시장 역시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글꼴 디자인 분야는 의외로 폐쇄적이고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특정 루트를 거치지 않으면 글꼴 디자이너가 되기 어려운데다, 노동 강도도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프로젝트가 글꼴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2년간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4종류의 글꼴을 활용한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8월 중순 즈음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WRM)에서 이들 글꼴을 이용한 타이포그래피 관련 작품, 그리고 활용안을 담은 책 등을 소개할 예정이니 많은 분들이 봐 주셨으면 합니다.
동아닷컴 IT전문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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