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미국 도청 의혹 보도에 “언론은 국익 먼저 생각하는 게 옳은 길”
대통령실이 미국의 한국 국가안보실 도청 의혹과 관련한 한국 언론의 보도를 두고 14일 “만약 국익과 국익이 부딪치는 문제라면 언론은 자국의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한국 정보 수집 과정과 진위, 정부 대응 적절성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의혹을 파고드는 언론 보도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사실보도와 권력감시를 책무로 삼는 언론에 ‘국익 보호’라는 역할을 부여하면서 뒤틀린 언론관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늘 국익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만”이라고 전제하며 이같이 말했다. 언론 자유와 국익이 상충될 때가 있지만 국익끼리 부딪칠 때는 자국 국익에 우선해 보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튀르키예 등 여러 나라가 이 사건과 관련돼 있지만 정치권에서 이렇게 정쟁으로 (다루고), 또 언론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다룬다거나 하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언론이 이 사안을 ‘자세히 다루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힌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대 사안에 대한 상세한 취재 및 보도를 국익침해 행위로 간주한 것이다.
이같은 발언에는 경우에 따라 언론의 판단 기준이 ‘진실 추구’가 아닌 ‘국익’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담겼다. 취재와 보도의 방향이 ‘국익우선주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으로 부적절한 언론관을 노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익이 언론 보도의 기준점이 될 경우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 축소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언론윤리헌장’ 1조에는 “진실 추구는 언론의 존재 이유”라고 명시돼 있으며, ‘국익 보호’에 대한 언급은 없다. 문제를 파고들어 개선점을 드러내는 언론 본연의 활동이 결과적으로 국익에 부합한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이 관계자의 설명은 외국 정보기관에 도청당해 국가안보 관련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는 국내 언론을 국익을 침해하는 단체로 규정한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경로로 정보가 유출됐는지, 도청 차단 등 대비가 충분한지 등을 지적하는 언론에 ‘축소 보도’를 주문한 것과 다름없다.
대통령실이 ‘정치권의 정쟁화’를 언급한 것은 야당이 집중 제기하는 용산 대통령실 보안 문제와 ‘저자세 외교’ 비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지난 11일 밝힌 공식 입장문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진위 여부를 가릴 생각도 없이 ‘용산 대통령실 이전’으로 도감청이 이뤄졌다는 식의 허위 네거티브 의혹을 제기해 국민을 선동하기에 급급하다”며 “이는 북한의 끊임 없는 도발과 핵 위협 속에서 한·미동맹을 흔드는 ‘자해행위’이자 ‘국익침해 행위’”라고 날선 비판을 내놨다.
대통령실은 미국 수사당국이 주방위군 소속 군인을 기밀문건 유출 혐의로 체포한 것을 두고는 이날 “아직까지는 전체적인 실상이 파악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한국 관련 내용 중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 정확성을 계속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 핵심 관계자는 “유출된 정보는 대체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것이고, 처음에 언론이나 야당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용산 대통령실의 도·감청의 문제라든지 한국을 겨냥한 어떤 행동이라든지 이런 것 하고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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