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도감청 의혹 일주일, 덮느라 급급 습관적 '언론 탓'하는 대통령실

노지민 기자 2023. 4. 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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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감청 의혹 불거지자마자 사실관계 부정, 미국이 시인하고 난 뒤 언론보도 문제 삼아
"이렇게 정쟁으로, 언론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다룬다거나 하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터무니 없는 거짓 의혹” “묻지 말라” “언론은 국익 생각해야”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을 일찍이 '허위'로 단정한 대통령실 입장이 그 대응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적인 외교·안보 문제가 발생하면 동맹관계를 내세워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의구심을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8일 뉴욕타임스(NYT)는 SNS로 유출된 미 정보기관 문건에 한국의 고위 국가안보 관리들간 대화를 도청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문희 당시 외교비서관이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우크라이나전 포탄 지원에 대한 우려를 밝히는 내용이 문건에 담겨 있다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는 “이씨와 김씨는 불분명한 이유로 지난달 사임했다”며 “워싱턴에 해명을 요구할 것인지 묻자 정부(한국)는 과거 선례나 다른 나라와의 유사한 사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해당 보도에 대한 대통령실 첫 반응은 10일 “미국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미국 국방부도 법무부에 조사를 요청한 상황이다. 사실 관계 파악이 가장 우선”이라는 대통령실 관계자 입장이었다. 당시 이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유출된 자료 일부가 수정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건에 등장한 당사자들에게 대화 사실을 확인했느냐는 질문에는 “외교 사안, 정보 사안은 구체적으로 확인해드리지 않는 관례”를 들어 답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보도 갈무리

이튿날 대통령실은 “(한미)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며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 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는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11일 서면으로 “굳건한 '한미 정보 동맹'”을 강조하는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진위 여부를 가릴 생각도 없이 '용산 대통령실 이전'으로 도감청이 이뤄졌다는 식의 허위 네거티브 의혹을 제기해 국민을 선동하기에 급급하다”고 했다. 특히 야당의 비판을 두고는 “끊임 없는 도발과 핵 위협 속에서 한미동맹을 흔드는 '자해행위'이자 '국익침해 행위'”라 표현했다.

이때부터 한미간 입장의 간극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미 당국은 “일부가 조작됐다는 것을 안다”고 했을 뿐 유출 문건의 위조 여부를 단정하지 않았다. 현지시각 10일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런 종류의 문서가 공공 영역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건 조작에 관해서는 “일부 사례의 경우 온라인상에 올라온 정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원래 소스에서 변경됐다”면서 “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문건을 비롯해 모든 문건이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건 유효성에 대해선 조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11일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양국 입장의 온도차를 지적하자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개된 문건들이 다 맞는 문건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고, 그 부분을 지금 미국정부에서 조사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과장 내지는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우선 팩트(fact) 문제를 확실하게 한 다음에 후속조치를 평가하는 게 순서”라고 답했다. 문건은 '위조'됐고,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 없는 거짓'이라던 단호한 입장과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다.

이후 김태효 국가안보실1차장의 '악의 없는 도청' '묻지마' 발언 논란이 불거지기에 이른다. 한미정상회담 막판 조율차 미국을 찾은 김 차장이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지금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앞서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고 밝혔던 그에게 '김성한 전 실장 대화가 조작됐다는 건가'라는 질문이 이어졌을 때, 김 차장은 “그 얘기는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면서 신경질적 태도로 자리를 떠났다.

▲KBS 보도 갈무리

같은 날 미국은 정보 유출 사실을 시인했다. 미국-필리핀 '2+2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지난 6일 오전 민감한 기밀자료의 무단 유출에 대한 보고를 처음 받았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문서의 날짜는 2월28일과 3월1일”이라고 밝힌 것이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이날 텍사스주의 한 대학 강연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국방부와 법무부가 매우 강도 높은 조사를 하고 있다”고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유감을 밝혔다.

대통령실의 해명이 미국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연일 제기되자 대통령실은 그 책임을 언론에 돌리기도 했다. 14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늘 국익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만약에 국익과 국익이 부딪치는 문제라면 언론은 자국의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본다”고 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문건 위조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익명으로 답하면서 이런 주장을 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은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굉장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파악이 끝나면 우리 측은 미국 측에 정확한 설명, 그리고 필요할 경우에 합당한 해명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튀르키예, 여러 나라들이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정치권에서 이렇게 정쟁으로, 또 언론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다룬다거나 하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의혹이 제기되면 충분한 설명 없이 사태를 축소하는 데 주력하고 끝내 언론에 책임을 묻는 행태는 윤 대통령 취임 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한일정상회담 이후 일본 언론을 통해 독도 및 위안부 문제가 다뤄졌고,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및 수산물 수입 재개 등의 요구를 받았다는 보도가 이어졌을 때가 단적인 사례다. 의혹 제기를 거듭 부인하던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출입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에서 어떤 이유로 언론플레이인지 재탕인지 하는지 모르겠지만 언론이 꼭 부화뇌동할 필요가 있나”라고 주장했다. 그에 앞서 지난해 윤 대통령의 뉴욕 순방 당시 비속어 의혹 보도 당시에도 윤 대통령 발언을 명확히 설명하기보다 언론의 보도를 문제삼으면서 사태를 장기화한 바 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연합뉴스

도감청 의혹에 대한 대통령실 대응은 국내외를 막론한 비판을 받고 있다. 10일 한겨레 사설은 “대통령실은 '한-미 동맹을 흔들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먼저 선을 긋고 미국의 잘못을 감싸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13일 동아일보 사설은 “대통령실의 태도를 보면 너무 성급하고 서투르기 짝이 없어 오히려 의구심을 키우는 모양새”라고 했다. 14일 한국일보 사설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만 강조하며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태도를 보여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외신이 한국 관련한 도감청 의혹을 다룬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11일 “한국 정부는 유출의 중요성을 최소화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한국 당국자들은 유출된 문서에 포함된 정보 등 정확히 무엇이 조작된 것으로 간주하는지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가디언은 “한국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사용될 가능성은 전쟁 국가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한국의 오랜 정책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한국) 당국자들이 진위 여부가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국방부 문서의 중요성을 축소하려고 시도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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