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웅이 거짓말 한 보름, 우승후보 LG는 무엇을 했나[김은진의 다이아몬드+]
LG가 불법 도박으로 KBO리그 연쇄 일탈 행렬에 가세했다. 선수는 일탈행위를 한 뒤 약 보름 동안 거짓말만 했고, 구단은 우승후보를 자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행정처리로 일을 키웠다.
LG는 14일 “이천웅이 혐의 사실을 인정했다”며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즉시 관련 사실을 통보하고 앞으로 검찰 조사와 KBO의 후속 조처에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BO는 정규시즌 개막 전 클린베이스볼센터를 통해 수도권 한 선수가 인터넷 불법 도박을 했다는 제보를 접수했다. KBO는 한동안 자체조사를 한 뒤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해 5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이 사실을 6일 발표했다. 당시에는 제보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라 선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소속 구단에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 선수가 LG 이천웅이라는 소문은 이미 퍼져 있었다.
LG 구단 역시 소문을 접했다. 이후 차명석 LG 단장이 4차례나 직접 면담을 하는 등 구단이 추궁했으나 이천웅은 계속 부인해왔다. 그러다 압박감을 느낀 끝에 지난 12일 구단에 온라인으로 불법 도박을 한 사실을 시인했다.
이천웅은 14일 조사를 받기 위해 스스로 경찰서에 갔다. 자백을 했으니 혐의는 확인됐고, KBO나 구단의 제재도 뒤따르게 된다. KBO는 수사 결과가 나온 뒤 제재를 결정할 계획이다. LG도 KBO의 제재가 나온 이후 구단 징계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소속 선수의 일탈 가능성을 접한 LG 구단의 후속 조처 과정을 들여다보면 매우 무책임하다.
KBO가 제보를 받은 것도, 그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도 개막 전이다. 그러나 이천웅은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다. 교체 멤버지만 계속 경기에 출전했다. 사실 여부를 묻는 구단에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며 동료, 구단, 리그를 속인 채 그라운드를 밟았다. LG는 사실상 알고도 눈을 감았다. 이천웅의 도박 사실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문제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엔트리에 품고 개막을 맞이했다.
LG 구단은 “KBO에 문의했지만 엔트리에 두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확인받았다”고 했다. 클린베이스볼센터에는 여러 종류의 수많은 제보가 쏟아진다. 입증할 수 없는 제보가 상당수고 당시 이천웅 건도 사실 확인 전이라 규정상으로는 엔트리 등록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KBO의 해석일뿐 어떻게 조치하고 사태를 정리할지는 구단이 결정할 몫이다. 이천웅은 이후 4경기를 뛰었다. 주전은 아니지만 대타로 투입됐다. 결승타도 쳤다.
LG는 “구단 내부적으로 조사를 계속 진행했다. 안 했다는 선수 말만 그대로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에게 피해를 줄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구단이 해야 할 일은 조사 이전에 관리와 운영이다. 선수단이 시즌을 원활하게 치러 최선의 경기력을 낼 수 있도록 잘 ‘운영’ 하는 것이다. 선수의 혐의 혹은 결백을 밝히려 조사하는 것과 별개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명확하게 밝혀질 때까지는 나머지 선수단이 문제 없이 경기할 수 있고, 추후 구단 혹은 스태프가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했어야 한다. LG는 이천웅과 면담을 하고 2군 선수단까지 뒤지면서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KBO 해석’과 ‘선수를 믿는다’는 명분으로 엔트리에 그대로 둔 것 자체가 방관이다.
경기장 밖에서 사고를 친 선수가 있다면 그 처분은 현장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구단이 상황을 파악했으면 조치를 위해 감독에게 보고하고 향후 진행 과정을 논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초기에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LG는 정작 사령탑에게는 지난 5일 경기 직전에야 이천웅에 대한 정식 보고를 했다. 다음날 오전 KBO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발표하자 곧바로 감독과 상의해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6일 경기를 앞두고 이에 대한 설명조차 염경엽 LG 감독이 직접 했다. 염 감독은 고민 끝에 현장 취재진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밝혔다. “어제 들었다. 검찰에게로 넘어갔다고 하는 이상 그 선수를 엔트리에 두고 기용할 수는 없다. 대신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단은 선수를 보호해줬으면 한다”며 사실에 대한 보도는 유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이천웅의 엔트리 제외 사유는 “담 증세 때문”이 됐다.
결백도 혐의도 확신할 수 없지만 선수가 아니라고 발버둥 치고 있는 상황에 선수단을 직접 끌어가야 하는 감독이 설명을 하게 되면서 벌어진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다. 구단이 일찍이 감독에게 상의하고 엔트리에서 제외한 채 시즌을 치렀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인데, 일이 커지자 그 해명 또한 감독에게 맡겼다.
당시 더그아웃에는 언제나처럼 구단 프런트들이 있었다. 일부 기자가 이천웅의 엔트리 제외를 언급하자 “감독님이 설명하실 것”이라고 완전히 감독에게 ‘마이크’를 넘기기도 했다. 사고가 벌어졌을 때 구단과 현장 스태프가 해야 할 일은 철저히 구분돼야 한다. LG 구단이 이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황은 현장에서 취재진과 매일 마주하는 감독의 얼굴을 방패막이로 세운 것과 다르지 않다.
LG는 과거 수많은 ‘선수 사고’를 경험한 팀이다. 선수 말만 믿고 ‘설마’ 하다가 뒷통수를 맞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올챙이 적을 생각하지 못하는듯 둔감해진 모습으로 선수의 뒤늦은 자백에 대표이사 이름으로 그 또한 뒤늦은 사과문을 냈다.
공식적인 사과는 또 사령탑이 했다. 염경엽 LG 감독은 14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선수들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켜서 팬들께도 정말 죄송스럽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 최대한 교육시키고 노력하겠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모자를 벗고 사과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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