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 페이퍼’부터 테세이라까지… 미국을 뒤집어 놓은 폭로자들
13일(현지 시각) 미국 정부가 기밀 문건 유포 혐의로 체포한 피의자가 미군 계급상 두번째로 낮은 일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 언론들은 수년전 비슷한 문제를 겪고도 또 다시 사병의 기밀 유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정보 취급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으면서 앞서 발생한 기밀 유출 사례들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이번 문건 유포 피의자인 잭 테세이라(21)는 앞선 문건 유포자들과 여러 방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선 유포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문건을 유포했다면 테세이라는 자기 과시를 위해 유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이번 유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관련된 내용이 주로 담겨있다는 점에서 파급력 또한 앞선 유포 사태들과 차이가 컸다.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기밀 문건 유포 사건에는 어떤 이들이 관여했고, 이들은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를 되짚어봤다.
◇펜타곤 페이퍼 사건(1971년)
-유출자: 국방부 소속 군사전문가 대니얼 엘스버그
-유통자: 뉴욕타임스 닐 시핸 기자
-유출 분량: 1967년 작성된 7000장 분량 보고서
-이후 미 정부 대응 및 처분: 검찰 115년형 구형했으나 무죄 판결
1971년 당시 미 국방부에서 국방전문가로 일하던 대니얼 엘스버그는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라는 문건을 뉴욕타임스(NYT) 기자 닐 시핸에게 건넨다. 펜타곤 페이퍼는 1945년부터 1968년 5월까지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미국이 수행한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다. 1967년부터 미 국방부에 의해 18개월에 걸쳐 작성됐다.
이 문건 작성에 참여한 엘스버그가 유출을 결심한 것은 그 스스로 미국이 인도차이나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7000여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시핸에게 공개했다.
NYT의 연재 기사 중 가장 화제가 된 내용은 미 정부의 통킹만(灣) 사건 조작이었다. 1964년 8월 미 국방부는 “베트남 근처의 (통킹만) 해상에서 미 군함이 북베트남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밝히곤 이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꾸며낸 일이었다. 해당 사실이 드러나며 미국에선 반전운동이 들불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리처드 닉슨 정부는 NYT의 보도가 미국 안보에 치명적인 손실을 끼칠 것이라며 보도 중지 소송을 걸었으나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엘스버그를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115년을 구형했으나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훗날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엘스버그는 당시에 문건을 시핸에게 보여주며 “복사하지 말고 내용 메모 정도만 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핸은 엘스버그가 휴가로 집을 비운 사이 문서를 훔쳐 복사했고, 몇 주 동안 호텔에 은둔하며 문서를 분석했다.
◇ 위키리크스 사건(2010년)
-유출자: 미 육군 브래들리 매닝(개명 후 첼시 매닝) 일병
-유통자: 위키리크스 창업자 줄리언 어산지
-유출 분량: 25만건 1.6기가바이트(GB)
-미 정부 대응 및 처분: 35년형 선고받았으나 7년으로 감형
2010년 미 육군의 정보분석가였던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 관련 문서 25만 건을 국방부 전산망에서 내려받았다. 그는 이 파일을 CD에 담고 ‘레이디 가가’라는 라벨을 붙여 유출했다. 음반으로 위장된 이 유출본은 2006년 12월 설립된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에게 넘어갔다.
매닝 일병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전쟁을 이용하는데 환멸을 느껴 문건을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유출로 인해 공개된 자료 중에는 미군이 아파치 헬기로 두 로이터 기자를 포함한 이라크 민간인을 사살하며 즐기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미국의 전쟁은 명분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고, 어산지는 전세계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됐다.
매닝은 즉각 체포돼 재판을 받았고, 2013년 3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사흘을 남기고 그의 형기를 7년으로 줄여줬다. 매닝은 수감 이후 자신의 성 정체성이 여성이라고 밝히고 국방부로부터 호로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승낙을 얻어냈다. 이름도 첼시로 개명했다.
사이버범죄법, 간첩법 등 18개 혐의를 적용받은 어산지는 미국으로부터 여전히 도망치는 중이다. 그는 2010년 스웨덴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국제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나 2012년부터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피신해 7년간 은거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2019년 에콰도르 대사관이 어산지 보호를 중단하자 영국 경찰은 그를 체포했다. 이후 미국은 어산지의 신병 인도를 원하고 있다.
◇ 스노든의 프리즘 폭로 사건(2013년)
-유출자: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
-유통자: 영국 가디언
-유출 분량: 170만건
-미 정부 대응 및 처분: 간첩죄·국가기밀유출죄 등으로 수배
2013년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은 국방부 산하 국가안보국(NSA)이 전세계 각국을 오가는 전화와 이메일 등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해 분석하는 ‘프리즘’이란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영국 가디언을 통해서였다. 그는 미국 정보기관이 행하는 정보수집 활동의 정당성에 회의를 품고 폭로를 결심했다고 했다.
프리즘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대기업의 서버에도 접근해 민간인을 포함한 사용자 정보를 수집·분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노든의 폭로를 계기로 NSA가 최소한 35국 정상의 전화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특히 동맹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의 휴대전화 등을 10년 이상 도청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도청이 드러난 후 메르켈이 직접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로 항의하고, 독일 외교부는 주독 미 대사를 불렀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을 포함한 38국의 주미 대사관을 미국이 도청해 왔다는 폭로도 이때 나왔다.
미국 정부는 즉각 스노든을 간첩죄와 국가기밀유출죄 등으로 수배했지만 그는 여전히 도피중이다. 독일·폴란드 등 27개국에 망명을 요청하고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던 그가 결국 택한 곳은 러시아였다. 스노든은 2020년 러시아의 영주권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엔 시민권도 얻어냈다. 미국에선 그가 법의 심판을 받을 경우 최대 30년형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디스코드 통한 기밀 유출(2023년)
-유출자: 미 매사추세츠주(州) 주 방위 공군 소속 잭 테세이라 일병
-유통자: 소셜미디어 통해 스스로 유출
-유출 분량: 최소 100건
-미 정부 대응 및 처분: 체포 및 신병 확보
이번에 발생한 잭 테세이라에 의한 기밀 유출이 기존 사례들과 가장 다른 점은 유출자가 일종의 ‘허세’를 바탕으로 저지른 범죄라는 것이다. 테세이라는 미국 공군 2019년 9월 입대한 후 통신망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아 왔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디스코드 대화방의 운영자로서 어린 10대 회원들에게 고급 정보를 뿌려 선지자처럼 추앙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는 대화방에서 정보 보고서의 요약본만 전달했으나 참가자들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자 실제 문서 사진을 제공했다. WP의 국가 안보 및 정보 담당 기자 셰인 해리스는 “청소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기밀 정보를 유출한 사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유출이 파장만 놓고 보면 기존의 기밀 유출에 비해서 더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유출 문건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것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시아군으로서는 미국의 정보망이 노출된 것을 역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전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고 있는지 증명하는 증거로 쓸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포탄 33만발의 운송 일정표, 우크라이나 방공망 지도 등은 실제 논의가 이뤄진지 40일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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