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소방관 공시생’ 오영환의 사명 [인터뷰]
“한 번의 희망 위해 99번 필사적 노력 하는 것
정치와 구조 다르지 않아…아직 출동하는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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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전북 김제에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화재 현장에 뛰어든 서른살 소방관이 불길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그날부터 소방관 출신 국회의원 오영환(35·더불어민주당)의 마음에도 하나의 생각이 들불처럼 번졌다. ‘한계다. 내려놓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도 괜찮다.’ 성공일 소방교의 영결식 이후 한달여의 시간 동안 마음을 벼린 뒤, 오 의원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 섰다. “저는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지난 10일 30대 정치인의 깜짝 발표에 정치권이 술렁였다.
“제 한계를 느낀 그날부터 시작됐던 거예요. 처음부터 불출마 회견문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참담한 심정을 담아 친구에게 썼던 편지에 살을 붙이고 고쳐 쓰면서 ‘나는 이렇게 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오 의원은 총선 불출마 선언 3일 뒤인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서울 광진소방서 119구조대원을 시작으로 산악구조대원, 항공구조구급대원 등을 거친 그는 2020년 총선 당시 민주당에 영입돼 경기 의정부갑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현재는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다. 오 의원은 10일 기자회견에서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정치에 투신했지만 더 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는 저의 한계를 받아들였다”며 “국민 곁을 지키는 소방관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진화 현장 소방관 순직에 절망…“‘희망 주는 정치’ 내 역할 아니야”
정치 경력 3년. 정치는 때로 풀 한 포기마저 몽땅 쓸어가는 화마와 같았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정치문화가 너무 극단화됐어요. 여야의 거리가 더욱 멀어졌고, 정쟁은 더욱 격렬해졌고, 상식이 사라졌다고 느껴요. 이태원 참사 당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인사검증에 실패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태도를 보면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나 책임조차 느끼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우리(민주당) 역시 더욱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고요.” 그가 불출마 회견에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조정해낼 정치적 역량을 결국 제 안에서 찾지 못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고 밝힌 까닭이다.
기자회견 이후 동료 의원들과 시민들에게선 응원이 잇따랐다. 그러나 몇몇 정치인과 언론은 아전인수식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친이낙연계’인 그가 이재명 대표에게 공천을 받기 어려울 테니 선수를 친 것이라거나, 당내 ‘팬덤정치’에 질려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란 해석이다. 오 의원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정치에서 마주한 제 한계를 이야기한 건 소회이지, 불출마의 이유가 아니에요. 정치 환경이 더 낙관적이었다고 해도 제 선택은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소방관이라는 사명이 불출마의 유일한 이유입니다.”
현장 공무원으로 돌아가려 국회의원을 그만두는 이가 몇이나 될까. ‘진정성’이란 수사만으론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어쩌면 중독”이라는 오 의원의 답변은 솔직하다.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 물속에서 끌어올렸던 조그만 아이의 손, 가족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생사를 오가던 70대 노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던 순간… 그런 순간의 감정은 구조·구급대원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에요.” 그는 요새도 종종 구급차나 소방헬기를 타고 출동하는 꿈을 꾼다.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출동하는 동안 현장을 이미지트레이닝 하는데 그 순간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거든요. 거기에 중독된 거죠. 우리가 달려가는 길 끝에 간절히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런 일은 직업을 넘어 사명일 수밖에 없죠.”
정치 현장에도 그런 구조 현장들을 닮은 데가 있었다. “감동적인 소생의 순간은 사실 100건에 1건 있을까 말까 해요. 99건은 실패로 끝나죠. 정치도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상대를 깎아내리고, 타협하지 않는 정쟁에 매몰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한걸음 나아가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더 많지만, 저는 여전히 정치를 믿습니다.”
오 의원의 1호 법안이었던 ‘샌드위치패널 금지법’(건축법 개정안) 처리 과정도 그런 희망의 기억 중 하나다. 대형 창고 화재 때마다 인명 피해의 주범으로 지목돼온 샌드위치 패널 등 가연성 건축자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법안으로, 건설업계 반발에 번번이 입법이 가로막혔지만 오 의원이 임기 첫해에 발의해 통과시켰다. “4년 안에도 못 해낼 줄 알았어요. 발로 뛰며 절실하게 설득하니 여야 의원들이 공감하고 함께 노력해주는 걸 보며 정치의 효능을 느꼈습니다.”
“소방관은 내 사명”…임용 위해 다시 공시생으로
절망의 순간은 곧이어 찾아왔다. 개정된 건축법 시행을 앞두고 있던 2022년 1월 가연성 자재를 사용한 한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에서 이형석·박수동·조우찬 세 소방관이 화재 진압 중 순직한 것이다. 소방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여러 동료를 떠나보낸 그는 정치를 시작하며 “다시는 그런 희생이 없도록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죽음의 행렬을 막지 못했다. 2018년 이후 스러진 소방관들의 유족에게 명절마다 손편지와 작은 선물을 보내는데, 그 수가 26명에 이른다고 한다. “현충원의 비석이 늘어갈 때마다 그 비석 하나하나가 제 마음속에도 세워졌고,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섰습니다.” 그가 현장으로 돌아가려는 이유다.
그럼에도 소방관 한 명보다 국회의원 한 명이 더 많은 이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2일 이재명 대표와 함께 강원도 강릉 산불 화재 현장을 찾은 그는 정치의 역할을 실감했다고 했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의 위로에, 재난 속에 슬퍼하던 주민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는 모습이었어요. 정치가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나 오 의원은 그 역할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했다. “제일 꼴보기 싫은 정치인의 모습이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 오만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국민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거겠죠.”
소방관을 사직하고 국회로 온 그는 다시 소방관 임용을 위한 ‘공시생’이 된다. 소방법을 만들던 이가 소방법을 공부하는 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옛 동료들은 “빨리 오라”고 응원 중이다. “국회에서 저는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존중하고 진심을 다하는 의원들이 많다는 걸 직접 목격했기에 제 사명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진 청년의 한 사람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작은 의미로나마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오 의원과의 일문일답.
—어제 이재명 대표와 강릉 화재현장에 다녀왔는데 어땠나.
“영향력 있는 정치인의 위로에, 재난 속에 슬퍼하던 주민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더라. 저처럼 (재난을) 실무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정치가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재난 속에서 슬퍼하는 상황에서 그분들이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으면 일단 정치에 의미가 있는 거구나 싶었고. 이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또한 정치의 역할일 텐데 남은 시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까 정치를 계속해야 하는 게 아닌가.
“민주당을 믿고, 정치를 믿는 것은, 앞으로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그 일을 하리라 믿는다는 뜻이다. 제일 꼴보기 싫은 정치인의 모습이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오만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국민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거다. 저는 다른 의원들을 믿는다.”
—불출마 기자회견문이 꽤 길고 인상적이었다. 직접 혼자 쓴 걸로 아는데, 언제부터 초안을 작성한 건가.
“누구와도 상의하지 못하고 결국 홀로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글을 써나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불필요한 억측이나 오해를 낳고 싶지 않아서 더 구체적으로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사실 처음부터 불출마 기자회견문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3월9일 현충원에서 젊은 소방관(성공일 소방교)을 묻고 올라오는 길에 당시 느낀 참담한 심정을 친구에게 편지처럼 썼던 글에 살을 붙이고 점점 이어지면서 그 결과로 ‘나는 이렇게 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냥 내 한계를 느낀 날로부터 시작됐던 거다.”
—불출마 선언 이후,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지역에서 저를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애써오신 분들에게는 너무 큰 상처와 실망을 드려서, 제가 평생 갚아나가야 할 빚이 되었다. 당내에서는 동료 의원께서 의원들 ‘단톡방’에 제 회견문을 통으로 공유하셔서 많은 의원님들이 말씀을 주셨다. 그날 워낙 정신이 없어서 뒤늦게 글을 보고 ‘오로지 나의 부족함으로 선택한 건데 여러 의원님들, 선배님들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전 떠나지만 여전히 정치의 힘을 믿고 민주당을 믿는다’고도 올렸다.”
—의원들이 상당히 감명을 받은 것 같더라.
“저에게도 개별적으로 오셔서 ‘그렇게 선수를 치냐’라거나 ‘내가 고민하고 있던 걸 제일 젊은 의원이 그러는 게 어딨냐’라고 하시더라. 아무튼 뭔가 저를 통해서 본인들의 고민을 투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걸 보면서 좀 놀라긴 했다. 사실 정치에서 마주한 제 한계를 이야기한 건 소회이지, 불출마의 이유가 아니다.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지, 그게 불출마 사유가 되지 않았다.”
—소방공무원 시험을 다시 보셔야 하는데, 소방 동료들은 뭐라고 하나.
“빨리 오라고 한다. ‘요새 시험 너 때와 다르다’고 놀리기도 하고.(웃음) 꿈을 가진 청년의 한 사람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공정이 상실된 시대에 국민들께 작은 의미로나마 남았으면 좋겠다.”
—총선까진 아직 긴 시간이 남았다. 왜 올해 4월10일을 택했나.
“선거가 다가오는 동안 마치 계속 정치를 할 것처럼 주위 분들께 나를 돕도록 하는 것은 그분들에 대한 기만이고 더 큰 배신이라고 생각을 했다. 총선 임박해 선언하면 당에 도움이 됐을 거라고도 하는데, 그런 정치적 계산을 조금이라도 할 것 같았으면 정치를 계속 했을 거다. 진심을 다해 국민들께 제가 결정한 날에 말씀을 드리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기자회견 할 때 오 의원 임기 중 순직한 소방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이유는.
“총선에서 당선되고 처음으로 갔던 곳이 현충원이다. 우리 다섯 명의 항공대원, 몇몇 분은 유해도 못 찾았는데 그 자리에 묻힌 동료들 앞에서 인사를 드리고 ‘다시는 여러분 같은 이런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노력하겠다. 안전한 사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2019년 10월 구급 환자를 이송하던 소방헬기가 독도 인근 해상에 추락해 오 의원의 동료인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소방대원 5명이 숨졌다) 매년 순직한 분들이 늘어날 때마다 현충원에 가서 함께 영결식과 안장식을 함께했는데, 현충원의 비석이 늘어갈 때마다 그 비석 하나하나가 제 마음 속에도 세워졌고,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섰다. 국민들께는 이미 잊힌 사고들이지만 그분들의 희생, 헌신을 기억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매년 명절마다 순직 소방관 유족분들께 명절마다 손편지와 작은 술 한 병씩을 보내고 있는데 2018년 이후 순직한 분들이 26명까지 늘었다. 명절마다 저는 그 숫자가 실감이 나서 괴롭다.”
—뼛속 깊이 소방관의 피가 흐른다고 했다. 소방관이란 사명은 어떤 건가.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 물속에서 끌어올렸던 조그만 아이의 손, 가족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생사를 오가던 70대 노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던 순간…. 그런 순간의 감정은 구조·구급대원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다. 저는 요새도 구급차나 소방헬기 타고 출동하는 꿈을 꾼다.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출동하는 동안 현장을 이미지 트레이닝하는데 그 순간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온다. 거기에 중독된 거다. 우리가 달려가는 길 끝에 간절히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런 일은 직업을 넘어 사명일 수밖에 없다.”
—소방관의 삶과 정치인의 삶, 무엇이 같고 다른가.
“정치 또한 구조 현장과 비슷한 면이 있다. 구조 현장에서 감동적인 소생의 순간은 사실 100건에 한 건 있을까 말까다. 99건은 실패로 끝난다. 100년의 어둠이 이어진다 해도 단 하루의 태양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늘 달린다. 이게 제가 예전에 소방이란 직업에 대해 쓴 표현인데 정치도 그렇게 느껴졌다. 절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아니까 그 한 번의 희망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일하는 거잖나. 상대를 깎아내리고, 타협하지 않는 정쟁에 매몰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한걸음 나아가는 순간들이 있다. 독재 시대도 지났고, 전란의 시기도 이겨냈고, 어떤 침탈로부터도 민주주의를 지켜내면서 전진해왔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더 많지만, 저는 여전히 정치를 믿는다. 정치는 결국 국민이 이끄는 것이고, 국민들껜 성숙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 각각 가장 보람 있던 날은 언제인가. 반대로 가장 힘에 부쳤던 날은.
“20년 동안 제대로 입법 논의도 안 됐던 건축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때 발로 뛰어서 동료 의원을 설득하고, 그분들이 공감하고 함께 노력해줌으로써 빠르게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거기에서 정치의 희망과 효능감을 느꼈다. 수백,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행 몇 달을 앞두고 이형석, 박수동, 조우찬, 세 분의 소방관이 냉동창고에서 순직하셨다. 가장 보람이 있던 일이 가장 자괴감이 드는 일로 바뀌는 날이었다.”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정치 환경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가정법은 허망하지만, 만약 정치 환경이 달랐다면, 선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까.
“그건 아니다. 정치 환경이 달랐어도 제 (소방관) 동료들은 여전히 위험한 곳으로 달려갔을 거고 그런 사고들을 막을 수는 없었을 거다. 물론 정치 환경이 더 낙관적이었다면 그만둘 때 좀 더 아쉬움이 남았을 거다. 그러나 정치를 계속하시는 분들이 더 노력해줄 거라고 믿는다.”
—입당할 때 기대한 정치 현실과 실제의 현실은 다른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정치문화가 너무 극단화됐다. 여야의 거리가 더욱 멀어졌고, 정쟁은 더욱 격렬해졌고, 상식이 사라졌다고 느낀다. 이태원 참사 당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인사검증에 실패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태도를 보면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나 책임조차 느끼지 못하는 거 같다. 우리(민주당) 역시 더욱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3년 전 입당할 때 다짐한 일들을 모두 이뤘나.
“입법이라는 게 노력한 대로 다 풀리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방 관련 법들은 정말 어렵게 한고비 한고비를 넘겨온 것을 알고 있어서다. 기대한 것보다 빠른 시일 안에 차근차근 변화를 이뤄낼 수 있어 감사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존중하고, 진심을 다하는 의원들이 저 외에도 많이 있다는 걸 직접 목격하고 느꼈기 때문에 정치를 믿고 저의 사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동료 의원들과 정치인들이 그 일을 함께 이어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저보다 경험과 역량을 가진 재난 전문가가 또다시 정치에 들어오는 것을 누구보다 고대한다.”
—남은 숙제는.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지휘권과 인사권, 예산권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쪽짜리 국가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고 직접적인 현장에서의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 거다. 정부의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한 대목인데, 마지막까지 설득에 노력하겠다. 그리고, 제도 개선을 넘어서 정치인으로서 꼭 하고 싶었던 것 하나를 말씀드리면, 국민을 구하려 헌신한 순직 소방관들을 기리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정말 기억하면서, 안전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례로 제가 소방청에 제안해 이룬 것 중 하나가, 순직 소방관의 이름을 딴 길을 만드는 거다. 2015년 서해대교 화재 진압 중에 순직하신 이병곤 소방관의 이름을 딴 ‘이병곤길’이 그렇게 생겼다. 저는 떠나지만, 누군가가 또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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