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재활용률 전세계 1위 수집하는 어르신 있어서죠
시세 6배에 구매한 폐박스로
캔버스 만들어 발송하면
재능기부 작가들이 그림 보내
작품 판매수익으로 회사운영
"폐지수집 노고 보상했으면"
"폐지를 비싼 가격으로 사드린다고 하니 폐지수집 어르신들이 '당신, 사기꾼 아니냐?'며 팔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어요. 제가 오히려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며 그분들을 설득했죠."
지난 12일 만난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41·사진)는 2017년 회사 창업의 시작을 이렇게 회고했다. 기 대표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 어르신들과 직거래한다. 폐박스를 1㎏당 50원 하는 시세의 6배인 약 300원의 가격으로 구매한다. 이 폐지를 가로 23㎝, 세로 16㎝ 크기로 재단해 겹겹이 쌓은 후 헝겊을 뒤집어씌워 캔버스로 만든다. 캔버스는 협약을 맺은 350여 명의 재능기부 작가들에게 보내진다. 그들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거나 캘리그래피를 담아 회사로 다시 보낸다. 이들 작품은 홈페이지 정기구독을 통해 판매되는데, 월 1만~3만원의 회비를 내면 금액에 따라 1년에 작품 4~12개를 받아보는 식이다. 현재 구독자는 400명에 육박한다.
물론 이 수입만으로 사업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학교를 대상으로 한 외부 활동도 수입의 큰 몫을 차지한다. 대표가 직접 나서 회사를 소개하고, 직접 폐박스로 캔버스를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DIY 키트를 판매한다. 쌀 포대를 수거해서 종이가죽을 만들어 파는 사업도 하고 있다. 그 결과 폐지수집 어르신 6명을 직접 고용했고, 그 외 6명 어르신의 폐지를 주 1회 매입하고 있다.
기 대표가 폐지수집 어르신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13년 NGO 단체 '종이나눔운동본부'를 만들면서부터다. 대안학교 교사 3년 차에 학기 말이나 수능 전전날에 초·중·고교에서 많은 책을 정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교에서 나온 종이를 기부해 폐지수집 어르신을 도왔다.
문제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시세였다. 아무리 종이를 많이 모아도 돈으로 환산하면 형편없었다. 차라리 어르신들이 모은 폐지를 고가에 매입해 그 가치를 높인 캔버스를 만들자는 묘안을 떠올렸다.
폐지수집 어르신에 대한 걱정과 연민은 많았지만 그들이 정확히 몇 명인지 파악한 정부 연구 보고서도 없던 시절, 폐지수집의 노동 가치를 직접 계산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나가야 했다. 기 대표는 "어르신 한 분이 1년에 수집하는 폐지가 9t쯤 될 걸로 계산을 했고, 이건 30년생 소나무 80그루에 해당한다는 계산이 나왔다"며 "연간 폐지 재활용률이 전 세계 1위인 한국에서 재활용의 상당량은 그분들이 담당하고 있다고도 봤다"고 말했다.
러블리페이퍼 사업의 한계는 기 대표 자신이 더 잘 안다. 모든 어르신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폐지 수집 어르신들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알리고, 많은 지지자를 모아 인식과 법을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게 저의 소명"이라며 "다른 지역에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운영할 개인이나 단체를 찾아 러블리페이퍼가 하나의 거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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