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돈을 생각하다

2023. 4. 1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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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은 가멸찬 삶, 즉 부를 향한 갈망을 품고 있다. 부(富)는 술 단지처럼 배가 불룩한 그릇을 뜻하는 복과 사당을 뜻하는 면이 합쳐진 말이다. 본래 신께 바치는 공물이 넉넉하다는 의미다. '갖추다, 많다, 풍성하다'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어려운 살림은 늘 만 가지 악의 근원이다. 집 안 쌀독이 비었는데, 도를 지키는 일은 힘겹다. 넉넉함은 도덕의 기초이고, 인간다운 삶의 핵심 원천이다. 정약용은 말했다. "아침저녁 끼니 거르는 일을 도에 가까운 경지라고 여긴다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굶주려야 할 테다." 작으나마 흡족할 만한 부를 마련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살아감의 제일 문제이다.

가멸찬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 비해 대체로 더 괜찮게 살아간다. 재화를 투입하면 더 많은 바람을 이룰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 경제학이 증명했듯, 소득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돈이 없으면 인간답게 살기 어려우나, 돈이 있다고 반드시 좋은 삶을 살진 못한다. 세상엔 돈이 없으면 하지 못할 것도 많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일은 더욱 많기 때문이다.

'부의 신'(도서출판 숲 펴냄)에서 그리스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말한다. "돈은 어떤 이에겐 행복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슬픔을 준다. 어떤 이에겐 축복이 되고, 어떤 이에겐 저주가 된다. 현명한 사람을 어리석게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지혜롭게도 한다. 노예에게 자유를 주고, 자유인을 욕망의 노예로 만든다." 돈은 그 자체로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돈은 지혜와 축복과 행복의 입구이기도 하고, 어리석음과 슬픔과 저주의 통로이기도 한 까닭이다.

술이 가득한 연못이나 나뭇가지마다 고기가 매달린 숲은 행복의 증거가 아니다. 지나치게 부풀어 오른 부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며, 사람을 망치는 징후이다. 부란 물질적 풍요 자체라기보다 정신적 역능의 눈부신 발현이다. 그래서 노자는 "넉넉함을 아는 일이 곧 부유함"이라 했고, 공자는 "한 그릇 밥과 한 바가지 물로 누추한 동네에 살면서도 즐거워하는 사람은 현명하다"고 말했다.

행복은 스스로 자기 삶에 만족하는 떳떳한 마음에서 온다. 부 자체가 삶의 준거가 될 때 인간은 불행하다. 그럴 때 부는 인간 삶의 기본 가치를 포기하도록 유혹하고, 개인과 사회를 타락시킨다. 돈을 숭배할 때 인간은 어리석어지고, 욕망의 노예로 전락해 도덕적 자존을 상실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떠올리지 못한다면, 당신은 불행하다. 경계할 일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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