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기 위해서 멈추자” 세종 정부청사 앞 모인 4000여명 시민들
“함께 살기 위해 멈춰”
14일 수백 명의 시민들이 세종에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울타리에 각종 문구를 풀칠해 붙였다. 이들은 ‘기후 정의’를 외치기 위해 하루 생업을 멈추고 이날 정부 청사가 있는 세종으로 모였다. ‘4000여명이 이룬 강’은 정부 청사 사이사이를 굽이쳐 행진했다.
414 기후정의파업조직위원회(조직위)는 이날 오후 세종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앞에서 ‘414 기후정의파업’을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414 기후정의파업조직위원회에 가입한 기후·환경단체, 노동조합, 환경단체, 장애인단체 등 350개 단체, 814명 추진위원, 개인 참가자 등이 참여했다.
수도권이 아닌 세종에서, ‘평일’ 오후에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조직위는 “대통령실, 국회가 있는 서울은 자연스럽게 정치·사회적 투쟁이 벌어지는 중심 장소지만, 온갖 개발사업이 벌어지는 기후 부정의 현장들은 (서울이 아닌) 지역”이라며 “대정부 투쟁의 현장으로 정부세종청사를 택했다”고 밝혔다.
조직위는 ‘기후 정의’를 위해 에너지, 교통의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라고 주장했다. 조직위는 전기-가스 요금이 오르는 동안, 대기업에는 수조원의 요금 할인 혜택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 기후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조직위는 “서울시가 교통공사 적자 7조원을 이유로 지하철, 버스 요금 인상을 계획하는 동안, 제주 2공항, 새만금, 가덕도 등 국비 수십조원이 소요되는 공항을 계획한다”라며 “자가용과 항공기 이용을 대폭 줄이고, 철도와 버스 중심 공공교통을 대폭 확충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교통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계속된 개발 사업 승인,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이날 발언에 나선 박은영 414 기후정의파업 공동집행위원장은 “정부는 국립공원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고, 지리산에 산악 열차를 놓겠다며 천연덕스럽게 생태학살 범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산업계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후위기 주범인데 재생에너지 비율은 줄이고, 핵발전을 늘리며 자본의 책임을 줄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을 멈추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태성 삼척화력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 상임대표는 “삼척은 정부 시책에 따라 대도시의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생기는 쓰레기는 삼척에 떠넘기고, 깨끗한 전기만 대도시로 진상되고 있다”라며 “주민의 등에 빨대를 꽂는 기후위기 주범 석탄발전소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기존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에 나서라는 주문도 있었다. 휴가를 내고 파업에 참여한 문근철 민주노총 한국발전산업노조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교육선전국장은 “15년째 일해온 회사가 2025년부터 일자리가 줄어들고 생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라며 “발전노동자들이 계속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오후 2시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앞을 출발해, 산업통상자원부 앞을 거쳐, 정부 청사 종합안내실, 환경부를 향해 ‘S’자를 그리며 행진했다.
‘기후 우울’ 겪는 대학생의 질문 “기후위기가 가짜 같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김시현씨(20)는 두 개의 수업 중 하나를 결석한 채 파업에 참여했다. 서로 모르는 중학교 친구 3명, 대학교 친구 3명과 함께였다. 김씨는 “부모님이 배추, 당근 등 밭농사를 순천에서 지으시는데, 폭염·가뭄 때문에 농사가 어렵다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대해서는 “기후위기가 가짜 같냐고 묻고 싶다”며 “‘기후 우울’을 겪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에서 온 이수아양(18), 박하린양(18)도 학교 수업에 빠지고 참여했다. 이양은 지난 11일 확정된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대해 “(올해 봄 이상 고온으로)여러 꽃이 동시에 피고 빨리 진 것을 보면서 ‘이렇게 살다가는 죽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계획을 제시하면 죽이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 양은 “청소년은 투표권이 없지만 책임을 져야 할 것은 우리”라며 “속상하다”고 말했다.
번쩍이는 은색 열 차단용 비닐을 두르고 집회에 참석한 무리도 있었다. 얼굴에는 ‘나는 선언한다’라는 종이 봉투를 가면처럼 쓴 채였다. 정정은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방재복을 입을 만큼 긴급한 위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연대가 지난 11일 공개한 ‘나는 선언한다’ 선언문에는 “우리 역시 기후위기를 부추긴 존재중 하나”라면서도 “또한 나는 선언한다. 그럼에도 이 위기를 끝장 낼 힘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4세 반려견 버들, 11세 자녀와 함께 파업에 참여한 차은주씨(44)는 “아이들의 ‘멸종위기’ 상황을 어른들이 만들어 뒀다”라며 “책임이 더 큰 어른, 기업, 정부가 앞장서서 석탄화력발전소, 원전 등 위험한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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