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나

2023. 4. 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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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희 국회 입성…‘정권심판’과 ‘민생 속으로’ 전략 성공
지난 4월 5일 전북 전주시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을 확정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두 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강 의원, 배우자 박수경씨 / 연합뉴스



총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대안 없던’ 양당체제에 경고음이 울렸다. 지난 4월 5일 치러진 전북 전주시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당 간판을 등에 업은 강성희 의원이 살아남았다. 이름부터 낯선 진보당 소속 정치인의 당선은 거대 양당만 주연인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반란으로 인식됐다. 자연히 관심은 ‘진보당이 대체 어떻게 당선될 수 있었나’에 쏠렸다.

선거 직후 복잡한 분석이 쏟아졌다. 문제는 이번에도 초점은 승리한 소수정당이 아닌 두 거대 정당에 맞춰졌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식 후보를 내지 않았다’거나 ‘상대적으로 관심이 저조한 재·보궐선거였다’ 등의 정치공학적 내용이 주를 이뤘다. 승리는 평가절하하고, 패배는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논의는 흘러갔다. 이로 인해 강 의원이 직접 밝힌 당선 비결은 소수정당의 ‘기막힌’ 생존비법이 아닌 ‘결과론’적인 이야기로만 소비됐다. 지난 4월 10일 국회 첫 등원 현장에서 밝힌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날 강 의원은 “국회 담장 밖에서가 아니라 국회의사당 안에서 진보당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고이자 변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민생 입법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현실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국회에 갓 입성한 의원의 단순 포부 같지만 해당 발언에는 선거의 승패를 결정지은 핵심 전략이 모두 들어 있었다. 즉 강 의원과 진보당은 이번 선거를 누가 ‘민생’과 ‘정권심판’이라는 키워드를 선점하고,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느냐의 싸움으로 보고 임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강 의원과 진보당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위치에서 여의도 정치 한복판으로 직행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야권이 유리한 지형으로 평가받는 선거구에서는 ‘민생 밀착 행보’와 ‘정권심판 프레임 선점’이 ‘이변’을 만드는 주요 요소라는 점을 실증했다. 남은 1년, 소수정당이 무엇에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정답지 하나를 도출한 셈이다. 주간경향은 지난 4월 12일 강 의원과의 서면 인터뷰 등을 통해 ‘대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소수가 살아남는 법

39.07%(1만7382표). 강 의원이 전주시을 재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수)이다. 이날 재선거에는 전체 유권자 16만6922명 중 4만4728명이 선거에 참여했다. 투표율로 따지면 약 26% 정도다. 낮은 투표율로 인해 선거결과가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하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총선을 1년 앞두고 벌어진 선거결과를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정신승리’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4월 6일 전주시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전주시 효자동 전북도청 부근 사거리에서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로 이번 전주시을 선거결과는 이른바 ‘양대 정당’이 모두 웃지 못할 상황으로 끝났다. 이로 인해 두 정당이 맞은 불편한 상황은 양당체제에 대한 경고라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책임정치를 실현하겠다며 텃밭에서 후보를 내지 않은 민주당이 처한 상황이다. 강 의원과 마지막까지 경쟁한 사람은 무소속 임정엽 후보다. 임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전주시을 재선거는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의 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만큼 민주당은 공식 후보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에 복당한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임 후보를 지지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 임 후보가 사실상 민주당 후보라는 기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임 후보는 총 32.11%(1만4288표)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민주당은 “중앙당과 전북도당은 전주시을 재선거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공식 후보가 없었더라도 당의 텃밭을 진보 어젠다를 공유하는 정당에 내줬다는 상황이 달가울 수는 없다. 주로 수성하는 입장에 있던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도전하는 입장으로 지위가 변했다는 점 역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남은 1년, 강 의원의 행보에 따라 판세가 불리한 쪽으로 기운 상황에서 민주당이 선거를 시작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 의원 역시 호남지역에서 민주당의 아성을 깬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수성’ 의지를 드러냈다. 그에게 ‘이번 선거 승리의 의미와 앞으로 진보진영 간 대결에서 어떻게 차별화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강 의원은 “지역적으로 경쟁자가 없는 민주당 1당 독식정치에 경종을 울린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진보당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자영업자 등이 당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말 그대로 ‘서민의 정당’이다. 그 자체가 민주당 등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강 의원이 말한 당 정체성이 ‘서민’에게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진보당의 선거전략이 지역주의나 가치가 아닌 ‘민심’을 움직이는 방향으로 특화되어 있다는 점과 엮인다. 구체적으로는 실용적 제도 등을 통한 민생 개선이다. 실제로 이러한 전략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 양분된 지역구도에 구멍을 낼 수 있음을 이번 선거를 통해 스스로 입증했다. 강 의원은 “서민의 정당이라는 것이 정치활동에서도 현장에 밀착한 풀뿌리 정치로 연결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당 차원에서 추진한 대출금리 인하 운동이나 가스 난방비 인하 등의 민생정치 행보가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당 후보들은 지역에서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울산동구 기초단체장을 포함해 21명의 지방의원 당선자를 배출했다”고도 덧붙였다. 이는 이른바 ‘중앙정치’ 대결에 집중하며 힘을 실어달라고 외치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과는 전략상 상반되는 움직임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받아든 참패 역시 또 다른 의미의 경고다. 이번 전주시을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나선 김경민 후보는 8%(3561표)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심지어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을 제기한 안해욱 무소속 후보의 10.1%(4515표) 득표율보다 뒤지는 결과다. 내년 총선에서 유의미한 대결을 펼치겠다는 국민의힘 측 각오가 무색해질 정도다.



문제는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다. 단순히 지역구도로 평가절하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진보당이 승리한 것은 단순히 민주당의 보완재 역할을 하는 정당이어서가 아니다. 진보적 색채를 가진 정당, 무소속 후보 중에서도 이들이 선택된 것은 오히려 어느 정당보다 선명한 프레임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 의원은 선거 때나 당선 후나 일관되게 ‘윤석열 정부 심판’을 외치고 있다. 취임 2년차를 맞은 정부를 상대로 소수정당이 ‘정권심판론’을 사실상 선점한 모양새다.

강 의원에게 ‘다음 총선에서도 정권심판을 주요 공략으로 내세울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민생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윤석열 정부가 취임 1년 동안 한 일은 전임 정부 지우기와 압수수색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야권 단결과 연대를 강화해서라도 윤석열 정권 심판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정권심판론에 작은 불이라도 붙으면, 야권은 편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경우 국민의힘은 선거 내내 정권심판론과 싸워야 한다.

민주당에도 고민은 있다. 정권을 심판하자는 야권 연대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문제다. 또 다음 총선에서도 사실상 제1야당이 유력한 상황에서 ‘협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딜레마가 생긴다. 유력한 제1야당보다 정권을 더욱 잘 비판하는 소수정당의 존재는 또 다른 이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을 소선거구제 방식으로 뽑는 현행 체제에서는 ‘내 옆에서 불편한 점을 해소해 주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욕해주는 인물’을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당이 무기로 든 ‘민생을 앞세운 지역밀착’, ‘정권심판 프레임 선점’은 소수정당이 현행 선거체제에서 생존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임을 보여줬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진보당의 승리가 운이나 우연 등의 요소가 겹쳐서 탄생한 결과가 아니라는 의미다.

지난 4월 10일 전북 전주시을 국회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등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의원 한 명에게 걸린 소수정당 생존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그렇다고 진보당 앞으로 꽃길이 펼쳐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총선까지 1년여가 남은 시점에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큰 이변이 없는 한 21대 국회는 총 300석의 의원정수 중 양대 정당이 284석을 나눠 가진 상황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소수정당 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오히려 원내로 진입한 만큼 위협은 늘었다. 당장 강 의원의 상임위원회 배치 문제가 화두가 됐다. 통상 재선거 또는 보궐선거로 원내에 입성할 경우 결원이 있는 상임위에 우선 배정된다. 현 국회에서 의원 수가 부족한 곳은 국방위다. 여기서 진보당의 전력 문제가 나온다.

사실 진보당이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중당이란 이름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유권자가 많다. 당시 결과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참패였다. 이들이 정당 존립을 위협받는 상황에까지 내몰린 것은 그 이전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12월, 헌정 사상 처음 있었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사태다. 진보당을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으로 볼 것이냐와 별개로 ‘종북 의혹’을 끊어내지 못하면 당은 확장성을 갖기 어렵다. 이는 이미 여러 차례 선거로 입증됐다. 진보당이 지향하는 노동, 농민, 약자와의 연대도 불가능하다. 강 의원에게 ‘색깔론’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는 “현 정권은 진보당뿐만 아니라 노동계, 심지어 제1야당 대표에게도 종북주사파라고 하지 않느냐”며 “철 지난 색깔론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거로 보여준 만큼 이제 윤석열 정부의 검찰독재에 맞서 앞장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총선까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강 의원은 유권자들에게 진보당의 존재감을 알리고, 대안정당으로서의 가치도 제시해야 한다. 자본, 조직, 인물 등에서 모두 앞선 거대 양당과 맞설 전략은 이미 세워둔 상태다. 문제는 그때까지 쏟아지는 각계각층의 견제를 버텨내며 제대로 존재감을 보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강 의원의 행보가 곧 소수정당의 생존 행보가 된 상황이다. 그가 다음 국회의 다양성 확장에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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