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뿐인 간호법 놓고 대립 격화

2023. 4. 1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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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적 내용 “차라리 간호인력인권법을”
의사들, ‘지역사회’ 문구 단독개원 해석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이 4월 10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의결 불발로 보건의료계의 대립 국면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의사협회와 간호조무사협회 등은 ‘간호법 반대’ 총파업을 예고한 반면 간호사협회는 70년 숙원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며 본회의 통과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은 애초 4월13일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었지만 국회의장이 제동을 걸어 상정이 미뤄졌다. 2주 뒤인 4월 27일 본회의에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의 간호인력 관련 조항을 떼어내 독립된 법안을 만든 것으로, 간호사의 활동영역에 ‘지역사회’를 추가하고 처우 개선 관련 조항을 보탰다. 간호사협회의 오랜 요구를 바탕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간호법은 내용이 아니라 간호인력의 독립된 법이 존재한다는 ‘형식’이 더 중요한 법률이다. 기존의 의료법·보건의료인력지원법 조항 일부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 즉 보건의료계는 알맹이 없는 형식을 두고 극한대치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간호법을 둘러싼 궁금증을 정리했다.

Q1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사 처우 개선이 이뤄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 인권침해 금지 등을 담은 조항들이 있지만 선언적 수준이기 때문이다.

간호법 제정안 가운데 노동조건 등을 다루는 조항은 제21조~제25조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간호사를 고용한 기관의 장은 근무환경 개선 및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해야 한다”(제21조), “간호사 등은 적정한 노동시간의 확보, 일·가정 양립 지원, 근무환경과 처우의 개선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제22조), “간호사 등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인권침해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제24조) 등의 내용이다. 처우 개선 의무를 명시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구체적 방안이 빠져 있다.

게다가 2019년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이미 간호사를 포함한 보건의료인력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 근로여건 개선을 위한 종합계획 수립이 의무화돼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선언적 조항마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축소’를 강제하는 법안이 이미 올라왔었다. 2년 전 국회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10만명이 동의한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안이 그것이다. 이 법안은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가 “입법 청원 취지가 간호법 제정안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청원심사소위로 옮겨진 상태다.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이 지난해 5월 22일 서울 여의도공원 출입구에서 간호법 제정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간호조무사 공동궐기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2016년 간호행정학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선 간호사 한 사람이 16.3명(종합병원)~43.6명(일반병원)의 환자를 본다. 미국(5.3명), 일본(7명), 영국(8.6명), 독일(13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숫자다(‘의료법에 의거한 의료기관 종별 간호사 정원기준 충족률 추이 분석’, 조성현 등 5인).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의 ‘태움’은 이 같은 인력구조 때문에 생겨났다.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의료현장에선 실수가 용납되지 않기에 저연차 간호사들을 극도로 몰아세워가며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악습으로 굳어진 것이 태움이다. 처우 개선과 인권침해 방지 등을 위해서는 ‘환자 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이유다. 이향춘 의료연대본부장은 “간호법 제정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의료현장의 간호사들에게 더 도움이 될 법안은 환자 수를 법제화한 간호인력인권법”이라며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내년 5월에는 폐기되기 때문에 진지한 논의가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Q2 간호법 제정안에서 ‘지역사회’라는 문구는 필요한가.

간호법 제정안의 제1조(목적)는 이렇게 서술돼 있다.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안전을 도모하여 국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간호사의 법적 활동영역에 의료기관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포함시켰다.

의사협회는 이를 두고 “간호사들이 병원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고 공격하지만, 이미 간호는 병원 밖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노인요양원과 같은 장기요양기관, 노인·장애인·한부모 복지시설, 영유아 100명 이상을 보육하는 어린이집 등이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를 고용해 간호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간호사가 가정으로 찾아가는 방문간호제도도 있다. 서울시에서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사업을 통해 노인과 건강 취약계층 가정에 간호사를 보내 건강관리를 지도한다. 전국의 읍·면·동에서 시행하는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도 이와 유사한 제도다. 가정에서 방문요양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은 방문간호서비스도 제공받을 수 있다.

간호법 제정안의 ‘지역사회’ 문구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간호협회의 설명이다. 최훈화 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은 “현행 의료법상으로는 간호사가 의료기관 밖에서 하는 활동이 무면허 의료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 “지역사회에서의 간호사 업무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국민도 질 좋은 간호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에선 낡은 의료법 때문에 현재의 방문간호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한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 케어) 사례를 연구한 김승연 서울연구원 도시사회연구실장은 “지자체의 간호공무원(간호사)들이 방문간호를 위해 노인 가정을 방문했을 때 의료법 때문에 혈압, 혈당 체크조차 해주지 못해 답답해 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대개의 노인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간호 등이 활성화돼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6년 한국은 65세 이상 노 인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의료·간호·돌봄을 통합한 서비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 연구실장은 “임종을 앞둔 많은 노인들이 병원에 누워계시기만 하는데, 방문간호를 통해 욕창관리, 튜브교체 정도만 주기적으로 받을 수 있어도 집에서 임종을 맞게 해드릴 수 있다”고 말한다.

2018년 정부는 노인들이 식사배달, 집수리, 요양 서비스, 방문 의료·간호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 케어) 제도를 일부 지자체에서 도입했다. 2025년까지 커뮤니티 케어 기반을 전국적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정권이 교체되면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간호사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Q3 간호조무사협회는 왜 간호법 제정에 반대할까.

현재 병원과 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약 23만명, 간호조무사는 약 20만명이다(2021년 3월 기준·보건복지부 통계). 게다가 간호조무사는 의료법(제80조의2 제2항)에 따라 동네 의원 같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선 간호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간호조무사 역시 간호인력의 또 다른 기둥이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간호조무사협회의 간호법 제정 반대는 간호사협회에겐 뼈아픈 대목이다.

간호조무사협회의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간호조무사 응시자격 제한 완화’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상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은 ‘특성화고 간호 관련 학과 졸업자’, ‘학원의 간호조무사 교습과정 이수자’에게만 주어진다. 이 같은 조건은 간호법 제정안에도 똑같이 담겼다. 간호조무사협회는 여기에 ‘전문대 간호조무사 관련 학과 졸업자’가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동환 간호조무사협회 기획실장은 “법률로 일정 학력 ‘이상’을 요구할 수는 있어도 ‘이하’를 요구하는 직종은 간호조무사밖에 없다. 전문대 과정 설립을 반대하는 간호사들은 간호조무사들에게 ‘너희들은 더 배우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일자리 축소 우려다. 현재 노인복지법·장애인복지법 등에 따라 각종 복지시설이 채용하도록 돼 있는 간호인력은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다. 상당수의 복지시설이 인건비 때문에 간호조무사를 고용하고 있고, 이들 간호조무사는 관련법 지침에 따라 복지시설 촉탁의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전 기획실장은 “지금의 간호법 제정안대로라면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는 촉탁의사가 아닌 간호사의 지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설 입장에서는 간호조무사를 지도할 간호사를 또 고용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결국 간호조무사 대신 간호사를 고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간호협회는 “기존의 법률과 하위법령을 간호법이 침해하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간호조무사협회는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연가투쟁’ 형식의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사 외 직역은 간호조무사뿐만이 아니다. 임상병리사협회, 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응급구조사협회 등도 간호법에 반대한다. 이들은 의학적 검사, 진단명·진단코드 관리, 응급구조라는 각자의 고유한 업무영역이 침범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내용을 담은 간호법 조항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간호사가 ‘의사 외 직역’에서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경우 간호사들이 자신의 영역을 넘나들며 일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이 같은 ‘약속직역’으로 분류되는 협회의 한 관계자는 “간호사들이 자신들의 심각한 노동조건 개선할 생각은 안 하고 편한 업무로 빠져나가는 길만 넓히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9월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소속의 한 간호사가 서울시청 앞에서 코로나19 간호인력 기준 발표하지 않는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을 한 후 사직서 제출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Q4 의사들의 파업은 정당성이 있나.

의사협회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간호사의 단독개원이다. 의협은 “간호법이 제정되면 병원 밖 지역사회에서 간호사가 의료행위를 하는 헬스케어 센터를 열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간호협회는 “간호법안의 간호사 업무 범위는 의료법과 같기 때문에 단독개원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최훈화 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이라고 반박한다.

현행 의료법이 규정하고 있는 간호사의 진료 관련 업무 범위는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다. 애초 간호법 제정안은 이 문구를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의사의 지도 하에’와 ‘보조’는 같은 의미인데 굳이 반복해 사용함으로써 의사·간호사 간 관계가 종속적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었다. 의사협회는 그러나 이 같은 문구 조정을 두고 ‘의사의 지도 없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려 한다고 공세를 펼쳐왔다. 의협의 반대 때문에 결과적으로 간호법 제정안의 간호사 업무 범위는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명시됐다.

그럼에도 의협은 여전히 간호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지역사회’ 문구를 들고 있다.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의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돼 간호사의 활동영역에 지역사회가 포함될 경우 간호사들은 지역돌봄센터 같은 것을 만들어 방문간호를 활성화하려 할 것”이라면서 “현장에선 돌봄과 간호, 의료의 영역이 불분명할 때가 많아 간호사들이 결국은 무면허 의료행위까지 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그러면서 “일단 간호법이 분리되고 나면, 하위법령 입안이나 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도 조정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의협의 이 같은 입장을 반영한 것이 국민의힘이 지난 11일 제시한 ‘지역사회 삭제’ 중재안이지만, 간호협회가 거부하면서 합의는 무산됐다.

Q5 간호법, 어떻게 봐야 할까.

<해외 간호제도 연구> 보고서를 쓴 박이대승 불평등과 시민성 연구소장은 “지금의 간호법 찬반 논쟁은 보건 직종 관련자들에게는 중요할지 몰라도,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보통 시민들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논의는 위계서열화 돼 있는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관계 문제를 고찰하고, 이 관계를 협력 관계로 바꿀 새로운 법체계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의료기관에서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의 관계는 수직적이다. 법률부터 이들의 역할을 위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 아래 진료를 보조하는’(의료법 제2조) 업무를 하고,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의료법 제80조의2)하는 업무를 한다(다만 의원급 의료기관에선 간호조무사가 의사의 진료 보조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간호사는 ‘의사의 보조’,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보조’다.

박이대승씨는 “한국에선 세 직종 사이의 관계가 오로지 ‘보조’라는 개념으로만 규정돼 있는 반면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선 각자의 ‘책임’을 명시하고 협업하는 관계임을 전제한 법률을 갖고 있다”면서 “기존의 카스트 체계를 바꾸는 작업이 간호법만 따로 떼어내는 것으로 이루어지진 않을 것이다. 보건(헬스)과 의료(메디컬)가 뒤섞여 있어 의사가 보건까지 과대대표하는 현 의료법을 전반적으로 바꾸기 위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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