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복잡하게 사니? 그냥 웃고 놀아봐 지구 끝 물범들이 인간들 향해 '씰룩'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3. 4. 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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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애니메이션 '씰룩' 제작 안병욱 밀리언볼트 감독

애니메이션은 세대를 불문하고 국경을 초월하는 힘을 지녔다. 아직 좁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즐거움과 꿈, 희망을 주고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얕잡는 어른들에게도 스스로 감추고 있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가 보는 이들이 가본 적 없는 곳이라도, 마치 등장인물들과 함께하는 듯한 마음으로 공감하며 울고 웃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애정하는 애니메이션을 평생 마음속에 하나씩 간직하고 살아간다. '아기공룡 둘리'를 TV로 즐겼고 '슬램덩크'를 영화관에서 봤지만, 이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전 세계에서 '핑크퐁'을 즐기는 시대에 애니메이션 흐름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씰룩(SEALOOK)'은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새로운 흐름을 타고 등장한 3차원(3D) 관찰 애니메이션이다. 지구 끝에서 만난 물범들 이야기를 2분 남짓한 짧은 구성으로 만들었다. 대사가 없어 특정 언어를 몰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북극 빙하 위를 부유하며 살아가는 물범들 모습은 마치 일상 생활 속에서 재미를 찾으려는 인간 모습과도 닮아 있다.

"진짜 물범을 보면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랑 똑같아요. 보다 보면 '왠지 이런 친구 있었던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든다니까요."

씰룩을 제작하고 있는 안병욱 밀리언볼트 감독(40)은 물범의 생태계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유로 인간과 유사한 그들의 삶을 들었다.

이승환 기자

"지금도 북극에는 물범들이 살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그 동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잘 모르거든요. 심지어 그게 물범인지 물개인지조차 구분 못하는 사람이 많을 테고요. 그걸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씰룩은 코미디를 기반으로 모든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거기에 다양한 인간적인 감성을 녹여보고 싶었어요."

앞서 '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라바'로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 눈도장을 찍은 안 감독은 새 작품에서 동물의 친근감을 적극 활용했다.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로 친숙한 캐릭터들이 이미 익숙한 상황에서 물범은 새로우면서도 귀여움을 내세울 수 있는 캐릭터였다.

3D 애니메이션 '씰룩' 밀리언볼트

"SNS를 하다보면 물범 이미지를 자주 보게 되고, 사람들이 귀여워하는데 생각보다 이걸 활용한 작품이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물범 이미지를 더 검색해봤더니 다 누워 있더라고요. 그게 되게 편안해 보였어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스트레스 없는 이야기를 얘네로 풀어보면 편안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죠."

치유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한 번 보면 빠져들게 되는 물범들의 움직임은 부연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3일 첫 회가 공개된 이후 약 4개월 만인 지난달 20일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했고, 13일 현재 구독자 수는 236만명을 넘어섰다. 아직 국내 구독자는 전체 중 10%에 못 미치지만 해외 구독자들 관심이 커 하루에 많게는 5만명씩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급격하게 구독자가 많아질 줄은 몰랐어요. 올해 1년간 구독자 목표치가 40만명이었거든요. 처음에 콘텐츠 30개를 동시에 공개했는데 구독자가 1000명도 안 모여서 걱정이 크기도 했고요.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니까 구독자가 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우리 작품을 대중이 좋아해줄지는 정말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해외에서 유명세를 얻으며 세계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에서도 러브콜을 받았고, 지난달 30일 중국 텐센트비디오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회선을 우회해 씰룩을 보던 분이 많았나봐요. 방영 전에는 큰 관심을 못 받았는데, 구독자가 늘어나니 중국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작품 속 물범들이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점도 볼거리다. 특별히 특징이 돋보이는 물범들 발끝에는 숫자가 새겨진 태그를 붙여 구분했다.

"실제로 북극에서 물범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되게 많더라고요. 멸종위기종이다 보니 개체 수 보호를 위해서요. 그분들이 동물을 구분하려고 태그를 붙이는 것에 착안했어요. 처음에는 숫자라서 구분하기 더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계속 보는 분들은 좋아하는 물범 숫자를 기억하시더라고요. 저는 매번 피로에 지쳐 있는 11번 물범을 좋아합니다."

앞서 '라바'를 TV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공개한 것과 달리 '씰룩'을 유튜브에서 선보인 것은 빠르게 변하는 콘텐츠 소비 트렌드를 따르기 위한 판단이었다.

"유튜브는 지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겨 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플랫폼이잖아요. 작품이 생물처럼 작용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짧은 영상을 지속적으로 올려야 하는 입장에서 반응을 바로 확인해야 다음 작품에 반영할 수도 있거든요."

안 감독은 '씰룩'이 하나의 콘텐츠 생태계로 자리 잡으면서 인기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씰룩'이 하나의 OTT가 되는 것을 상상해요. 한 채널 안에 코미디도 있고, 음악도 있고, 먹방도 있고, ASMR(자율감각 쾌락 반응)도 있거든요. 그래서 더 구독자들과 소통할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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