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황판 옆에 서서 산사 종소리 들어보세요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재해석
5월 13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미국 주가지수 나스닥 숫자가 출렁거린다. 한국 코스닥은 물론이고 독일, 영국, 말레이시아 등 20여 개 지수가 실시간으로 투사되는 검은 벽과 해 뜰 무렵 지리산 실상사의 영상이 나란히 흐르고, 33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야자나무까지 놓인 전시장 1층의 텅 빈 공간은 김순기(77)의 신작 '주식정원-템플'이다.
모든 것이 자본으로 환원되는 세상을 비판적으로 해석한 작품 앞에서 작가는 "주식 숫자가 우리 몸에 새겨지는 시대이지 않나. 1990년대부터 해온 '주식 거래' 연작의 변주다. 주식 가치와 불교의 부처님 마음이 동등한 시대를 내가 장난기가 있어 이렇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실험미술 선구자'인 재불 작가 김순기의 개인전 '침묵의 소리'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개막했다. 5월 13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서는 작가의 철학이 구현된 신작과 '바보 사진' 연작 등이 소개된다.
독일 카를스루에예술미디어센터(ZKM)에서 개인전을 막 마친 뒤 광주비엔날레 참여차 방한한 그는 기자들과 만나 "1990년대부터 21세기는 자본주의, 기후, 디지털 등의 조건이 세계를 점령한다고 말해왔다. 내 말이 맞은 것 같다. 이런 조건들에 의해 미술작품도 달라지는 시대가 됐다"며 "돌아보니 45년을 대학에서 가르쳤는데도 집에 갇혀 작업만 했다. 미련하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 당나귀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신 기술인 비디오를 가장 먼저 접했지만, 대학 시절엔 원시적 제의에 끌리기도 했다. 위층과 아래층에서 김순기의 여러 면모가 만난다"고 설명했다. 지하 1층을 채운 신작 '깡통 통신'도 비판 정신이 발휘된 작업이다.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이 보도하는 뉴스가 일방적으로 전파된 모습에 문제의식을 갖고 드로잉한 것을 작가가 1991년부터 모은 깡통을 실로 얼기설기 연결해 서낭당처럼 원시 사원을 세워 현실화했다. 깡통 통신과 다름없는, 왜곡된 소통 문제를 직시한다.
1982년 세계를 배낭여행하면서 동서양의 예술과 철학을 탐구했던 작가는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두는 방법을 사유한 작업도 남겼다. 바늘구멍 카메라를 사용해 장시간 빛에 노출해 사물과 풍경을 담은 '바보 사진' 연작이다. 흐릿하고 몽환적 이미지로 비디오를 편집하던 컴퓨터가 놓인 작업실, 1990년대 중국 무전여행 사진, 이틀 동안 노출해 우연히 찍힌 달 2개 등 사진 10여 점이 3층에 걸렸다. 작가는 "비디오로 갔던 것은 빛을 가지고 작업하고 싶어서였다. 사진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3층에서는 신진 작가 심래정(40)의 개인전 '깨어나니 정오였다'도 동시에 열린다. 기면증을 주제로 삼은 키치적이고 감각적인 회화와 영상, 설치 등 14점이 전시된다. 주로 그라피티 작업을 해온 작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인간 신체에 궁금함이 있어 이미지를 그려가면서 탐구해봤다. 기존에 쓰지 않던 원색을 썼고, 페인팅은 학생 때 이후에 처음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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