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겐 축복, 지구엔 재앙 에어컨 바람의 서늘한 역설

고보현 기자(hyunkob@mk.co.kr) 2023. 4. 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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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의 안락함 에릭 딘 윌슨 지음, 정미진 옮김 서사원 펴냄, 3만5000원

현대인에게 '냉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일상에서 듣기 힘든 낯선 단어지만 우리는 냉매에 완전히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다. 20세기 초반 현대식 에어컨이 탄생한 배경엔 프레온으로 대표되는 냉매가 있었다. 이후 약 50년간 프레온은 대기 중으로 대량 방출되면서 지구상에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책은 산업혁명 이후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에어컨과 냉각제가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지금의 기후위기를 불러온 과정을 기록했다. 저자 에릭 딘 윌슨은 환경 인문학과 인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그는 에어컨을 통해 기득권이 빈곤층에게 어떻게 기후위기 문제를 전가해 왔는지, 방임과 무지를 거치며 인류가 치러야 할 혹독한 대가가 어떤 변화를 거치며 점차 거대해졌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서늘하고도 쾌적한 안락함 뒤에는 무엇이 올까. 저자는 "개인적인 안락함을 미국인들에게 처음으로 안겨준 CFC 냉매를 사용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대대적으로 파멸하는 일에 관여하게 됐다"고 말한다.

책에 달려 있는 부제는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그 마땅하고 불편한 윤리'다. 작가는 "문제는 에어컨을 살 것인지 혹은 사용할 것인지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진짜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지 않고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구조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 가치관"이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공기까지 상품화해버린 오늘날 사고방식 시스템을 지적하고 그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며 경고를 날린다.

말미에 작가가 주장하는 것은 개개인이 에어컨과 냉장고 사용을 당장 멈춰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편협하고 개인화된, 개인적 편안함에 대한 욕망을 만들어내는 정치·경제·문화적 구조를 바꿈으로써 그 책임을 공동체가 아닌 '개인 의지'에 맡기는 서사를 전환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책은 환경 정의를 위한 해결책으로 첫째, 지역사회가 관리하는 재생에너지의 공급과 둘째, 인종과 계급에 관계없이 에너지가 효율적으로 쓰이고 환기가 잘되는 공공장소나 주거 형태 같은 냉방 공간 등을 설계해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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