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美친개, 퀸메이커[한현정의 직구리뷰]
별 기대 안 했건만, 하루가 순삭이다. ‘믿보배’ 두 배우의 만남이지만, 이들의 연기력과 별개로 올드하고 진부하고 지루할 줄 알았다. ‘인권 변호사’ ‘정치쇼’ ‘워맨스’ ‘서울시장’ 등 핵심 키워드부터 기대보단 피로감이 앞섰다. 하지만 플레이를 누른 순간 멈출 수 없었던 이유, (문소리의 새 얼굴도 물론 반갑지만) 단연 압도적인, 블랙홀 김희애월드다.
넷플릭스 새 한국 시리즈는 ‘퀸메이커’는 총 11부작으로, 김희애는 12년째 업계 최고 평가 소리를 듣고 있는 대기업 전략기업 실장 황도희를, 문소리는 노동인권 변호사 오경숙을 각각 연기한다. 오경숙은 황도희가 일하는 대기업에 맞서 싸우다 황도희 눈에 띄어 서울 시장 선거에 뛰어들게 된다.
대한민국 최대 재벌가 은성그룹에서 ‘해결사’로 불리며 십여년간 오너 일가의 충직한 ‘견공’으로 지낸 황도희는 선을 한 참 넘은 이들의 뻔뻔한 민낯에 환멸을 느낀다. ‘돈’이라는 절대 권력으로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을 깨부수고자 ‘흑화’가 된 그는 적수일 때부터 눈여겨보았던 타고난 스타성의 오경숙에게 찾아가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한다.
“이거 완전 제대로 돌아이네!”라며 황당해하던 오경숙은 은성그룹의 더러운 야욕을 엿보게 되고, 이로 인해 고통받게 될 서민들을 위해 결국 황도희의 손을 잡는다. 극과극 이색 조합은 의외로 환상의 케미로 대중의 호응을 얻지만, 그럴수록 각종 위협이 이들을 옥죈다.
다시금 ‘지옥’을 맛본 황도희는 사활을 걸고 ‘퀸메이커’로 나선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짐승의 네 발이 아닌 인간의 두 발로 서기 위한 힘찬 레이스를 펼친다.
김희애는 역시 김희애다.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강렬하고 뻔한 서사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 갑이다. 대립 관계이지만 애증의 대상인 서이숙, 환멸의 대상인 류수영, 분노의 대상인 이경영, 동화돼가는 문소리까지 모든 캐릭터들과 다른 색깔의 케미를 만들며 입체적 연기의 끝을 보여준다. 극적 서사에 따른 격동의 감정선은 말할 것도 없고.
문소리의 에너지틱한 얼굴도 반갑다. 정의로운 성정, 이상적인 직업관 때문에 자신의 가정은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서민의 영웅이자 가족의 대역죄인인 짠내나는 호감 캐릭터 오경숙과 잘 어울린다. 시시때때로 사고를 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네버다이 진격의 코뿔소다.
다만 초반부 기세가 중반부 급격히 떨어지며 황도희에 묻히는 경향이 있다. 평소 자신의 정치석 성향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배우의 개인 행보가 어떤 시청자들에겐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 외 인물들은 다소 아쉽다. 정치쇼 주요 패널인 정치인들부터, 은성그룹의 노답 식구들이나 조력자들까지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 초반부 그럴듯한 아우라를 뛰어 넘는 몰입도는 보여주지 못한다. 배우들의 명품 연기로 이 같은 아쉬움을 상당 부분 달랜다.
전개는 상당히 빠르다. 단점은 감추고 강점을 도드라지게 하는 영리한 메가폰이다. 예상 가능한 서사들은 억지로 꼬거나, 애써 감추지 않고 일찌 감치 오픈한다.
강약 조절도 좋다. 뻔한 구간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후루륵 넘어간다. 에이스와 에이스의 대결이나 갑작스런 비극 등 짧고 굵은 반전의 구간들,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성향을 활용한 소소한 유머들도 적절하다. 무엇보다 김희애의 탁월한 연기에 이 드라마틱한 복수의 결말을 빨리 보고 싶으니, 떨어지지 않는 몰입도다.
정석에 충실한 복수극이자, 블랙코미디를 겻들인 쉬운 정치극, 정의의 판타지를 녹인 뜨거운 워맨스다. 김희애의 진가에 문소리의 텐션을 황금비율로 조합한, 신선하진 않지만 매우 똑똑한 ‘퀸메이커’다. 오는 14일 전 세계 공개.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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