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25살에 대학 입학…배우는 만년 취준생" [인터뷰+]

김소연 2023. 4. 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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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흐르다' 진영 역 배우 이설
배우 이설/사진=저스트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를 보고 '불편했다'고 느끼셨다면, 저는 성공한 거 같아요. 그런 불편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연기했거든요."

영화 '흐르다'는 서른살 취업준비생 진영이 한국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던 중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작품이다. 이설은 주인공 진영 역을 맡았다. 무능하고 욕심 많은 아빠, 집안 구성원들을 섬세하게 돌보지만 자기 멋대로인 엄마, 그런 부모가 싫어 떠났지만, 동생에게는 가족을 돌보길 강요하는 언니까지 진영에겐 가족이 가장 큰 굴레이자 압박의 존재이지만,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집을 떠나지 못하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영화 관람평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답답함'이었다.

이설은 이런 반응에 반가움을 드러내며 진영과는 전혀 반짝이는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똑 부러지고,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 진영이를 연기했을까 신기했을 정도. 이설은 "물 흐르듯 했다"면서 "신기하게도 연기하면서 힘든 게 하나도 없었다"면서 연출자인 김현정 감독과 함께 출연한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배우 이설/사진=저스트엔터테인먼트


▲ 이해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배우로서 '흐르다'를 어떻게 봤고, 이해했는지 궁금해요.

저는 총 4번을 봤어요.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처음엔 '이렇게 완성됐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두 번째엔 '누가 만드냐에 따라 이렇게 될 수 있구나' 싶었죠. 세 번째엔 이게 나오기까지 3년이 걸린 작품인데, '3년 전 내 모습은 저랬구나' 싶었고요. 네 번째 봤을 때 '아, 이 영화의 주제는 이거였구나' 명확하게 짚이는 부분이 있었어요.

▲ 이설 씨가 해석한 주제는 무엇일까요?

정말 저만의 해석인데,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인 거 같아요. 하고 싶은 걸 찾았다면, 그걸 해야 한다는 거죠.

▲ '흐르다'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배우나 스태프들을 모집하는 공고를 올리는 온라인 사이트가 있는데, 저희 매니저가 감독님이 올리신 것을 보고 연락을 드렸어요. 감독님도 '너무 좋다'고 화답하셨고, 저 역시 감독님의 단편영화들을 좋아해서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만났어요.

▲ 개인적인 호감을 갖는 것과 작품에 호감을 갖는 것은 다른 부분인데요. '흐르다'의 어떤 부분이 끌렸나요?

일단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가 최진영 작가님인데, 캐릭터 이름이 최진영이라는 점에서 1차 호감이 갔고요.(웃음) 최진영 작가님 글과 김현정 감독님 글의 분위기가 비슷해서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어요. 캐릭터 구축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어요. 소설을 보는 느낌이었거든요. 감독님은 제가 진영이라는 캐릭터와 너무 반대라 궁금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 진영이와 반대되는 성향은 어떤 부분인가요?

뭘 숨기거나, 혼자서 생각하거나 하는 부분들이요. 진영 자체가 내성적인 부분이 있는 캐릭터인데, 그런 부분이 달랐던 거 같아요. 감독님이 진영이가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길 바라셔서 그 부분도 연기하면서 답답했는데, 그런 육체적인 답답함이 심리적인 답답함으로 이어져 무던하게 연기한 거 같아요. 공통점이 없다 보니 더 답답함을 느꼈고, 그 부분을 표현하려 했어요. 관객분들이 '답답하다'고 느꼈다면 제 입장에선 성공이에요. 기뻐요.

▲ 극 중 경상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데, 알고 보니 경상도 출신이더라고요.

부산에서 태어났고, 경상도에서 20살 전까지 살았어요. 아주 익숙했죠. 그래도 극 중 배경은 대구라, 저는 경상남도 쪽 사투리라서 미묘하게 다르거든요. 저도 서울에서 산 세월이 있어서(웃음) 다시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요. 엄마 역의 안민영 선배님이나 감독님, 스태프분들도 대구분들이라 많이 여쭤봤어요. 나름 사투리 과외를 받았죠.

▲ 김현정 감독과 작업은 어땠나요?

3년 전이라 다 좋은 기억뿐이에요.(웃음) 진영이는 감독님과 많이 닮았어요. 조용조용한데 집요한 구석이 있죠.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게 나올 때까지 파고드셨어요. 어떨 땐 '이렇게 테이크가 길게 가도 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그게 맞더라고요. 14초 동안 암전으로 엄마의 죽음이 표현되는데, 그 부분도 너무 좋았어요. 사람이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으면 암전이 되잖아요. 그걸 잘 표현해주신 거 같았어요. '이런 시도는 우리가 세계 최초일 거야'라는 생각도 들고.(웃음) 자랑스러웠어요.

▲ 촬영하면서 의견충돌은 없었나요?

한 번도 없었어요. 마지막에 캐나다로 갔을 때 '이젠 활짝 웃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감독님은 '미소 정도로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현장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웃고, 대화하고, 떠드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담고 싶었고, 진영이가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어서 웃고 싶다고 했죠. 그 정도의 충돌이 유일했던 거 같아요.(웃음) 그런데 완성본을 보니, 감독님의 선택이 맞는 거 같아요.

▲ 진영이는 외국계 기업을 지망한다고 하면서 언론사 준비 스터디를 하더라고요.

외국계 기업이든, 언론사든, 누구에게나 호불호가 없는 좋은 직업이니, 진영이는 그런 게 갖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냥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곳에 가고 싶은 취준생 같더라고요. 그래서 스터디에도 나가고요. 캐나다 워홀을 마음먹기 전 호주 워홀도 준비했는데, 그때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포기했는데, 같이 공부하던 동생이 '언니 때문에 캐나다 워홀을 선택했다'는 말에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면서 추진력이 생긴 거죠.

▲ 성적인 장치는 아니었지만, 극 초반부에 노출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 부분이 부담되진 않았나요?

안전장치도 많이 해주셨고, 가슴도 다 가려주시고. 남자 스태프도 많았는데, 전혀 부끄럽지 않았어요. 신기한 현장이었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에 감사했어요. 또 무엇보다 꼭 필요한 노출이라고 생각해서 부담이 없었어요. 목욕탕 장면 상대 배우는 엄마였고요. 샤워를 마친 후 아빠가 있으니까 편히 나오지 못하고 옷을 입고 나와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표현한 거죠.

▲ 진영이는 취업준비생인데, 이설 씨도 다른 또래 배우들과 비교하면 빠른 데뷔는 아니었어요. 이설 씨의 취준생 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지금도 취준생이에요.(웃음) 배우는 이름만 다르지, 취준생과 다름없어요. 다른 배역을 맡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하고. 프리랜서가 다 이렇지 않나 싶어요.

▲ 배우는 어떻게 하시게 됐나요?

24살에 친구가 "뮤직비디오 찍어볼래?"라고 해서 하게 됐어요. 백예린 씨의 뮤직비디오인데, 편집돼 저는 나오지 않지만, 그 현장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영상 속에 살아 움직이는 걸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감독님께 "이 일을 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쭤봤고, 다시 수능을 쳐서 대학에 가게 됐어요. 그전에는 그냥 자유롭게 살았던 거 같아요. 25살에 대학에 다시 간다고 했을 때도 '그냥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었어요. 저에게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죠.

▲ MBTI가 궁금해지네요.

INTJ에요. 공상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어요. 매일 공상을 해요. 저는 러닝을 뛸 때도 좀비가 쫓아온다고 생각하면서 하거든요.

▲ 30대가 됐어요. 서른살이 된 후 달라진 것들이 있을까요?

자꾸 조급해지는 것도 있는 거 같고, 생각도 많아지는데, 저 자신을 마주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20대 땐 뭔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정리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수치스러운 모습도 보려고 하고요. 이전엔 있는지도 모르고, 신경도 안 썼거든요. 요즘은 마주하려 하고 있어요.

▲ 차기작들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요.

긴 드라마 촬영을 7개월 정도 했고요. 연극 '오셀로' 제안이 와서 준비 중이에요. 첫 연극인데다 대극장이라 부담이 많이 됐는데, 연출님도, 박호산 선배님도 적극적으로 응원의 말씀을 해주셔서. 저에게도 큰 도전이 될 거 같아요. 주변에도 조언을 구했는데 연극은 꼭 한번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한 거 같아요. 성격을 반영한 작품은 하고 싶지 않나요?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고 아세요? '흐르다'를 하고 나서 복싱이 그렇게 하고 싶더라고요.(웃음) 아니면 '포드대페라리' 이런 에너제틱한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복싱은 잘하진 않지만, 취미로 해오고 있는데, 지금은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서, 잘 못하고 있어요.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밤에 끝나거든요. 그래서 기운을 비축하느라 뭘 하지 않고 있죠.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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