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코로나도 가까스로 버텨냈는데…" 생계 잃은 이재민들 '막막'
이광복씨 "다시 일어설 엄두조차 못 내"
이재민들 "실질적인 구호, 복구대책 절실"
경포 인근 쑥대밭…관광경기 타격 불가피
"관광이 최고의 자원봉사" 강릉여행 홍보
"그동안 코로나19도 어렵게 극복하고 올해 정말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한순간에 모든 것이 날아가 살길이 막막합니다"
14일 오전 찾아간 강원 강릉시 경포해변 일대. 지난 11일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3일이 지났지만 새카맣게 타버린 건물에 다가서자 여전히 매케한 냄새가 꼬끝을 찔렀다. 산불이 해안가까지 빠르게 확산해 인근 숙박시설과 상가 등을 사정없이 집어삼키면서 쑥대밭으로 변했다. 또한 경포 주변의 송림과 가로수는 물론 경포해수욕장과 사근진해수욕장 주변의 데크와 화장실, 샤워장, 포토존 등의 일부 시설물들도 불에 타 말그대로 폐허를 연상케했다.
이날 경포해변 인근인 안현동에서 만난 이광복(46)씨는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건물 2동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씨는 이 곳에서 5년 동안 서핑숍과 숙박시설 등을 운영해 왔지만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그냥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이와 가족까지 있는데 오죽하면 '한강'을 검색할 정도로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며 "산불이 생계를 이어가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가면서 다시 일어설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고 절망했다.
이씨는 올 들어 관광객들을 위해 야외 빔 스크린을 설치하고,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한 요트 2대의 정비를 마치는 등 사업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영업을 코 앞에 두고 청천벽력과 같은 재난을 당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씨는 "그동안 코로나19로 제대로 영업을 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정말 올해는 열심히 해보려고 관광 성수기를 앞두고 투자도 많이 했지만, 보시다시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며 "당장 가족이 살아가야 할 생활비와 돌아 올 카드값 등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생활을 접고 10여년 전 강릉으로 이주해 펜션을 운영하며 노후를 보내던 신동윤(76)씨 역시 검게 그을린 건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올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리모델링 공사까지 시작했지만 산불에 휩쓸리면서 영업은 커녕 당장 거주할 공간조차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신 씨는 "긴박했던 상황에서 아내와 함께 몸만 빠져나오느라 챙긴 것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처한 상황에 막막하지만 당장 대안이 없다는 것이 더 힘들게 한다"며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했다고는 하지만 우리 같은 이재민들의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 질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재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구호와 복구 대책이 마련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산불에 피해를 입지 않은 주변 숙박업소와 상가들도 걱정이 크다.
가까스로 불길을 피하기는 했지만, 산불 피해 소식에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기고 있기 때문이다. 숙박업계에 따르면 산불이 난 지난 11일 이후 대형 호텔 객실 예약률이 평소보다 20% 가량 떨어지고, 예약 취소도 빗발치고 있다. 화재 피해가 심각했던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등 소규모 숙박시설의 상황은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숙박업체들은 "날씨가 풀리면서 예약이 몰려야 할 시기에 오히려 기존에 있던 예약들까지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근 식당가를 둘러봐도 평소보다 눈에 띄게 손님들이 줄었다.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강릉시는 관광객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강원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등 정부기관과 공동으로 산불피해지역 방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시는 현재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진행되고 있는 2023 내나라 여행박람회에 참가해 "산불피해지역 강릉, 관광이 최고의 자원봉사입니다"라는 배너기를 걸고 행사 참가자들에게 강릉관광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앞서 시는 지난 2019년에도 옥계지역 산불피해 이후 서울에서 관광 캠페인을 전개했다. 당시 실제로 많은 관광객들이 강릉을 방문해 실의에 빠진 시민들과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된 바 있다.
강릉시 관계자는 "이번 산불로 인해 강릉여행을 취소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 지역경제가 걱정"이라며 "상인들의 일상회복과 산불피해지역을 돕고 싶다면 꼭 강릉을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11일 오전 8시 22분쯤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8시간 만인 오후 4시 30분쯤 주불이 잡혔다. 특히 이번 산불은 기존 산불과 다른 '도심형 산불'로 확산하면서 주택과 펜션, 상가 등 건축물 피해가 컸다.
이번 산불로 주택 77동, 숙박시설 6동, 축사 3동 등 154동의 건축물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전파는 116동, 반파 18동, 부분 파손 20동 등으로 조사됐다. 당초 59동이었던 주택피해가 늘어난 것은 주택과 상가가 공존했기 때문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인명 피해는 주민 1명 사망했고, 추가로 경상 1명이 추가돼 모두 19명으로 늘었다. 지난 13일까지 파악된 이재민은 333명으로 강릉아레나에 1층에 마련된 텐트 157동에서 임시 거주하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지난 12일 강릉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빠르게 피해지역을 복구하고, 피해 주민이 신속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행정·재정적 지원이 가능해졌다. 시는 피해주민 신고접수를 바탕으로 관계부처 간 합동조사를 통해 복구계획를 조속히 마련할 방침이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이번 산불은 기존 산불과 달리 '도심형 산불'로 건물이 많이 타 피해액이 크고, 이재민도 많이 발생했다"며 "긴급복구비가 기존 산불과 달리 많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돼 정부에 특별지원금 150억 원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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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영동CBS 전영래 기자 jgamj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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