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건강도 몸처럼 '2년마다' 검진…생명존중마을로 자살 막는다
검진대상에 조현병·조울증 추가…자살사망 유족 '원스톱 지원' 확대
"자살동반자 모집" 등 위험정보 '24시간 모니터링'→신고·수사 의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 심리부검면담 결과, 대개는 사전에 뚜렷한 경고신호를 보였다."죽고 싶다"는 말은 물론 일부러 대화를 피했고(관계 회피), 식생활과 수면에도 변화가 생겼다. 평소보다 덜 먹거나 더 먹고, 깊은 잠에 들지 못해 자주 깨는 식이다. 외로움과 무기력감 등을 호소하기도 했다. '멍 때리기'도 흔한 시그널이다.
주변에서 이를 '적신호'로 인식한 비율은 2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가까이(46.2%)는 '걱정은 했지만 별다른 대처를 취하지 못했'다. 2020년 정부가 자살시도 후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도움 요청 목적'으로 이같이 행동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35.8%나 됐다. 적절한 사회적 관심과 개입이 필수임을 보여주는 지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령 표준화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자 수)은 23.6명으로 가입국 중 압도적 1위다. OECD 평균치인 11.1명보다 2배 이상 높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소폭 줄었던 자살률은 2021년 다시 26.0명으로 반등했다. 연간 자살사망자는 1만 3352명에 이른다.
정부는 기존에 10년마다 이뤄진 정신건강 검진도 일반 검진과 마찬가지로 2년 주기로 단축하기로 했다. 또 전국적으로 '생명존중안심마을'을 조성해 지역사회에서 고위험군을 조기발견하고, 공동체를 통한 자살예방활동도 전개한다.
젊은층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담과 더불어 자살유발정보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전담조직도 구축한다. 자살시도자·유족 등 고위험군의 신속한 치료를 위한 비용 지원도 올해 개시한다.
정신건강도 '2년마다' 검진…청년층부터 도입
보건복지부는 14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6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년)을 확정·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고립감과 경제적 어려움 등에 따라 자살률이 급증할 가능성에 대비해 '지역사회 생명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코로나 유행기간 우울증 진료환자는 2019년 79만 6364명에서 2021년 91만 785명으로 8.7% 늘었다.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도 2년 새 각각 12.6%와 9.6%의 증가 폭을 보였다. 사회적 긴장도가 높고 국민적 단합이 강조되는 재난 시기엔 자살률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2~3년 후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에 따라, 5년마다 범정부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자살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을 비전 삼아 오는 2027년까지 국내 자살률을 30% 감소(2021년 26.0명→2028년 18.2명)시키겠다는 게 이번 계획의 목표다. 5대 추진전략으로는 △생명안전망 구축 △자살위험요인 감소 △사후관리 강화 △대상자 맞춤형 자살예방 △효율적 자살예방 추진기반 강화가 제시됐다.
우선 정부는 국민들의 '마음 건강'을 선제적으로 살피기로 했다. 자살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주된 요인이 '정신적 문제'(39.8%, 2021년 경찰청 변사자료 자살통계)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현재 만 20~70세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검진은 10년 주기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일반 (신체)건강검진 주기와 같은 2년으로 단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상질환도 기존 우울증에 조현병과 조울증 등을 새롭게 추가한다. 일반건강검진 기관 내에서 선별검사를 실시하고, 위험군으로 판정되면 정신건강의료기관에서 심층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진단 이후 사후관리도 강화한다. 초기 조현병 등을 진단받은 환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정신건강복지센터(자살예방센터) 등과 연계해 치료와 사례관리를 진행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국가건강검진 검사항목 관련 타당성 분석을 위해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다. 이르면 2025년 청년층(20~34세)부터 개편된 정신건강 검진체계를 도입하고, 적용 연령층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역 특성 맞는 '생명존중안심마을' 조성…낙인효과 우려도
눈에 띄는 개념은 정부가 내년에 조성을 계획 중인 '생명존중마을'이다. 먼저 연내 각 지자체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구축하기로 했다.
가령 청소년이 많은 신도시는 '학생 마음건강 마을', 어르신 비중이 높은 농어촌은 '어르신 마음건강 마을' 등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예로 든 사례는 2021년 서울시 최초로 진행된 강서구의 '생명사랑 안심아파트'다. 경찰·사회복지관 등 지역 내 유관기관이 아파트 주민과 함께 생명존중문화를 확산시키고 자살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굴·관리하고자 했던 사업이다.
정부는 지자체별 선도모형을 만들어 우수사례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기로 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내 자살예방 실무분과 설치도 활성화시킨다.
다만, 일각에선 '생명존중안심마을'이라는 규정이 의도와 달리 해당 마을에 일종의 '낙인 효과'를 줄 수 있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복지부 이두리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이에 대해 "청년 중심이라 한다면 자조모임이라든지 캠페인 활동 같은 '밝은' 성격의 사업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농·어촌의 경우 노인들이 가시는 병원이 많지 않다. 내원 시 수면장애 등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보건소 등을 연계해 자살 고위험군을 찾아내는 사업도 맞춤형으로 추진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이 과장은 "자살률이 높고 문제가 있는 지역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동네는 청년이 안전한 마을' 등 긍정적으로 홍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살시도자·유족 치료 지원…온라인 유해정보 '24시간 모니터'
자살 위험이 현저히 높은 자살 고위험군 관리도 강화한다. 자살시도자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보다 20~30배 이상 높고, 자살사망 유족 또한 8~9배 위험도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살사망 두 달 전 59.4%는 동네 병원을 찾았다는 건강보험공단의 분석도 있다.
이에 정부는 비(非)정신과 1차 의료기관 이용환자 중 우울증 환자 등 정신건강위험군을 발굴해 정신건강의학과·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전문기관에 연계하기로 했다. 올해부터는 자살시도자·자살유족에 대해 자살시도로 생긴 신체 손상에 따른 치료비, 정신과 치료비, 심리상담비 등 치료비용도 지원된다.
구체적으로 치료연계 환자가 실제 정신과 등을 방문하면 연계 수가를 지급하는 시범사업은 효과성을 평가해 전국으로 확대한다. 정신적 문제나 자해 위험으로 지속 치료 또는 응급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유족·자살시도자)은 1인당 100만원 한도 내에서 국고 지원(중위소득 120% 이하)이 이뤄진다.
특히 자살 유족은 정신적 어려움과 더불어 법률적·경제적 문제 등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한 점을 감안해 '원스톱 서비스'를 현 9개 시·도에서 전국으로 확대 시행한다. 사고 발생 직후 유족 전담직원이 현장에 출동하는 등 초기대응부터 심리지원과 법률, 일시주거, 사후 행정처리 등을 모두 폭넓게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자살동반자 모집 등 자살 유발정보에 대해서는 '24시간 모니터링'으로 대응한다. 지금은 자원봉사자가 활용되다 보니 신고·삭제요청까지만 가능하고, 시차도 다소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자살유발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전담조직을 확충해 신고와 긴급구조·수사 의뢰에 이르기까지 즉각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자살유발정보예방협의회를 컨트롤타워로 두고 자살을 야기할 수 있는 정보의 기준, 부처별 중점 모니터링 분야 선정도 논의할 계획이다.
유선(1393)으로 이뤄지고 있는 자살예방상담은 청소년·청년이 익숙한 SNS 상담을 도입한다.
자살사고가 급증하는 지역은 자살실태를 신속히 파악해 지역 주도로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한다. 종전에는 통계청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받으려면 약 1년이 소요됐지만, 앞으로는 자살예방법 개정에 따라 경찰청이 해당 정보를 추출해 전달하기가 보다 수월해졌다.
재난상황 발생을 대비해 국가트라우마센터-광역·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협력하는 위기대응체계도 구축한다. 고위험군은 재난 이후 2년간 집중 모니터링을 통해 밀착 관리한다.
앞서 기본계획 공청회 당시 논란이 됐던 '번개탄 생산금지' 내용은 빠졌다. 대신 유해가스 저감 번개탄 개발을 추진하고, 판매 시 용도 묻기·비진열·포장지 위험문구 삽입 등을 통해 접근성을 낮추겠다는 방안이 담겼다. 형사사법정보 분석결과를 토대로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소(교량 등)는 집중 관리한다.
조규홍 복지장관은 "자살률 감소 목표 달성이 쉽지만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살률이 30% 감소한다 해도 OECD 국가 중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촘촘하고 튼튼한 생명안전망 구축과 자살시도자·유족에 대한 효과적 지원을 통해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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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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