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퓨전사극, 이제 판타지 조선의 사대문 울타리를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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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퓨전사극과 지금의 퓨전사극이 달라진 점이라면 웹툰 등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각색된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세 퓨전사극이 보여주는 조선시대의 모습은 실제 역사보다 K-판타지 조선에 가깝다.
이 같은 퓨전사극 속 K-판타지 조선 세계관은 일단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의 공간이다.
조선시대 사대문 밖 성저십리인 이태원과 서빙고에 살면서 조선의 괴물을 잡는 가난한 아웃사이더 선비들이 주인공인 소설 <빙고선비> 처럼 K-판타지 조선의 세계에는 아직 찾아낼 이야기들이 많다. 빙고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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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초창기 퓨전사극과 지금의 퓨전사극이 달라진 점이라면 웹툰 등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각색된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최근 방영중인 SBS <꽃선비 열애사>나 MBC <조선변호사>도 그런 경우다. 이번 주 종영한 tvN <청춘월담>은 웹툰 원작은 아니나, 중국 인기소설 <잠중록>의 저주받은 세자 설정을 차용해 한국식으로 변형한 경우다.
세 퓨전사극이 보여주는 조선시대의 모습은 실제 역사보다 K-판타지 조선에 가깝다. 조선시대의 풍물과 분위기 등을 차용하면서 로맨스, 코믹, 호러, 판타지 등의 요소를 섞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간다. 물론 정극 사극처럼 왕실의 서사와 권력다툼 역시 이 퓨전사극의 중요한 요소다. 다만 실제 왕이 아닌 아예 가상의 왕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같은 퓨전사극 속 K-판타지 조선 세계관은 일단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의 공간이다. 가상의 역사이긴 해도 사극으로 익숙한 조선시대를 기반으로 하기에 친근감을 준다. 여기에 일단 넘어설 수 없는 신분의 벽이나 남녀가 유별했던 상황 등을 통해 강렬하고 애절한 로맨스가 만들어진다.
<청춘월담>의 왕세자 이환(박형식)과 살인자란 누명을 쓰고 궁에 몰래 숨어들어 남장 내시로 살아가는 민재이(전소니)의 로맨스가 그런 설정이다. 한편 조금은 유치해 보이는 만화 같은 설정 역시 K-판타지 조선에서는 용납이 된다. <꽃선비 열애사>의 객주 이화원 주인 윤단오(신예은)와 꽃선비 3인방이 그려내는 유쾌한 관계가 그 전형적인 예다. K-판타지 조선은 현대의 사건들을 풍자극이나 현실 비판의 시각으로 보여주기에도 좋은 세계다. 조선시대 변호사 외지부의 강한수(우도환)가 주인공인 <조선변호사>가 이런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세 편의 퓨전사극 모두 고만고만한 재미는 있지만, 아쉬움이 더 크다. 일단 세 드라마 모두 다소 익숙해진 퓨전사극 특유의 설정을 넘어서지 못한다. 궁궐을 드나드는 어여쁜 한복 입은 사대문 안 청춘남녀의 코믹한 말장난 속에 피어나는 로맨스가 다소 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뭔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퓨전사극의 기본 툴만 장착하면 시청률에서 국밥은 말지 않는다는 안일한 믿음이 배어 있다고나 할까?
게다가 세 드라마 모두 정작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요소는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청춘월담>은 로맨스 못지않게 저주에 관한 스릴러 코드가 중요하다. 하지만 <청춘월담>은 그 섬뜩한 요소를 흐지부지 흘려보냈다. 대신 남장 여인 로맨스에 치중했지만 여주인공의 남장 설정도 KBS <연모>의 이휘(박은빈)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진 못했다.
<꽃선비 열애사>는 정작 주인공들의 주고받는 코믹한 말장난보다 폐세손 이설과 파수꾼의 정체가 무엇인지가 더 궁금하다. 오히려 추리물의 비중을 높였다면 오히려 더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변호사>는 같은 시간 SBS <모범택시>가 현실 풍자의 지존을 보여주는 탓에 풍자적 요소가 그냥 빤한 코믹 요소로 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이처럼 최근 기대감을 높였던 퓨전사극들이 지지부진해진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 세계는 여전히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득하다. 조선시대 사대문 밖 성저십리인 이태원과 서빙고에 살면서 조선의 괴물을 잡는 가난한 아웃사이더 선비들이 주인공인 소설 <빙고선비>처럼 K-판타지 조선의 세계에는 아직 찾아낼 이야기들이 많다. 이제 퓨전사극은 사대문 밖으로 나가, 로맨스와 코미디의 세계관보다 좀 더 웅장하고 환상적인, 그러면서도 지금 현재를 사는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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