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성장’이 초래한 ‘압축소멸’ 해결을 위한 전환···‘창작과비평’ 200호 기념 심포지엄

김종목 기자 2023. 4. 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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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창작과비평> 200호 기념 ‘대전환의 한국사회, 과제와 전략: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심포지엄이 14일 오후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유재건 부산대 명예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황정아 문학평론가. 연합뉴스

창비와 세교연구소가 14일 심포지엄 ‘대전환의 한국사회, 과제와 전략: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열었다. 계간 <창작과비평>의 200호 특별호(2023년 여름호 발간 예정)를 기념하는 행사다. <창작과비평>은 1966년 첫호를 간행했다. 1970~80년대 독재정권 시기 판매금지 처분, 강제 폐간, 출판사 등록취소 같은 탄압을 받았다.

200호 특집은 언론, 정치, IT 기술, 플랫폼노동, 장애인권, 농촌·지역 운동, 평화 운동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주요 인사를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다. 창비는 “‘25년 뒤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전망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노력을 짚어본다”고 했다.

심포지엄 주제, 취지도 200호 특집과 이어진다. 참석자들은 ‘대전환과 자본주의’ ‘돌봄’ ‘사회생태 전환’ ‘대안 서사’ 등을 논의했다. 창비 측은 “ 지속적으로 현 체제의 한계와 사회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창비가 발신해온 메시지를 점검하는 자리로 기획했다”고 알렸다.

행사는 오후 2시 시작했다. 창비가 미리 배포한 발제문을 정리했다.

“한국은 근대화의 기치 아래 권위주의형 돌진적 개발로 선진국 진입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인류 역사 최악의 합계출산율,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가족살해라는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학 교수)는 ‘사회생태 전환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한국의 과거와 현재 문제를 이같이 진단했다. “외형상 ‘압축성장’을 달성했지만, ‘압축소멸’의 징후가 출현”한 것이다. 압축성장을 이끌었던 ‘목표-계획-실행-달성’의 선형적 사고방식으로는 참상을 해결할 수 없다며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한 게 사회생태 전환이다.

조효제는 ‘2050 탄소중립’처럼 시점을 정해놓고 목표를 제시하는 방식 때문에 사회생태 전환을 시한부 행동처럼 오해하게 된 측면이 있다는 점부터 지적했다. “전환은 방향성은 분명하지만 종착점을 특정할 수 없는 기나긴 여정”이라고 했다.


☞ [정동칼럼] 탄소중립이 아니라 기후정의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7110300105

‘실존적 위기’라는 기후위기 같은 경우 모든 사람이 만사 제쳐놓고 해결에 전념해야 이치에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조효제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기후-생태 위기가 머릿속에 들어오겠는가”라며 “다른 일이 터지면 일단 그것부터 대처해야 한다. 현실을 감당해야 위기를 극복할 힘도 나온다”고 했다. “성차별, 노동, 농업, 교육, 복지, 저출생, 초고령화, 인구감소, 연금, 지역격차, 불평등, 부동산, 돌봄, 높은 대외의존도와 글로벌 공급망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그것과 함께 전환의 길을 찾아야 한다.”

‘사회생태계’를 구성하는 건 생물권 내 경제사회계와 생태계다. “폭우가 오면 반지하에 사는 취약계층이 위험”에 빠지듯 하나의 꾸러미로 작동한다. 사회불평등이 심해지면 환경이 나빠진다. 불평등이 심하면 건강이나 수명에 악영향을 끼친다. 정치적 양극화 및 민주주의의 후퇴가 오고, 그 틈을 타 막개발, 공항 증설, 케이블카 설치와 같은 반환경적 조치가 나오기 쉽다.

조효제는 “사회계의 문제는 생태계를 나쁘게 하고, 그것은 다시 사회생태계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전환은 곧 가치관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탈식민, 한국의 민주화운동 등 정치적·사회적 전환의 역사는 단순히 억압의 족쇄를 풀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을 담은 변혁이었다.”

사회생태 전환도 마찬가지다. “생물권 전체의 안녕, 모든 인간 약자와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각별한 공명, 성평등과 정의에 대한 비타협적 자세, 다양성과 공존의 옹호, 지속 불가능성의 해체 등 특정한 가치관을 바탕” 둔 것이다.

조효제는 일회용품 쓰지 않기 같은 ‘개인의 작은 환경실천’의 표출적-상징적 차원의 가치가 크다고 했다. “환경상의 효용보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가를 드러내면서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더 중요하게 표상되는 행위다.”

백영경(제주대 사회학과 교수)은 ‘전환의 지향으로서의 돌봄: 커먼즈와 최일선 공동체 사이에서’를 발표했다. 돌봄도 생태 전환과 이어지는 문제다. 백영경은 돌봄소득을 두고 “나와 타인, 가족, 나아가 생태계까지 무엇인가를 책임있게 돌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돌봄을 행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즉 돌봄소득은 “돌봄이 가능한 사회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수단”이여야 하는 것이다.


☞ “만성적 인력난 시달려” 돌봄노동 중요성 커지지만 종사자는 ‘저임금·고용불안’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4111529001

백영경은 돌봄을 민주적으로 배분하여 고루 책임지게 하는 수단이라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로 낮은 임금을 받는 가족 구성원과 여성들의 ‘독박 돌봄’ 현상을 주로 초래하는 장시간 노동을 꼽았다. 돌봄 해결의 핵심은 “돌볼 수 있는 시간의 확보, 이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시간의 감축”이다.

이 문제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이주여성들이 한국의 돌봄노동의 큰 부분을 담당한다. 이주여성의 자녀를 돌보는 건 또 가족들이다. 백영경은 “글로벌 남반구의 여성이나 취약한 위치의 다른 어떤 여성에게 노동을 전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돌봄노동을 재배치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는 지구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과도 이어진다.

황정아(문학평론가)는 <‘대안’ 서사와 ‘이행’ 서사>에서 ‘지속불가능한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날 수 없다’는 즉 ‘대안은 없다’는 서사의 문제를 지적한다. 황정아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앞질러 포기하지 않고 거기서부터 이행의 단초를 발견하는 서사가 중요해진다. 어딘가 없는 장소의 상상이나 장차 도래할지 모를 폐허의 환기가 아닌, 아직 남아 있는 장소에 대한 애착을 복원함으로써 서사의 역량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며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게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다. “사회주의자로서 스스로를 단련해왔기에 가능한 성취”였던 아버지의 남다른 사람됨과 일상에서 신념 실천 등을 실마리로 본다.


☞ 아버지가 죽고 아버지를 깨달은 빨치산의 딸···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09021447001


☞ [인터뷰]‘빨치산의 딸’ 아닌 ‘그냥 정지아’가 말하는 구글·민사고 그리고 자연 속에서 글쓰기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303240600001

유재건(부산대 명예교수는 ‘대전환과 자본주의: 맑스(마르크스)와 월러스틴을 다시 봄’을 발표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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