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두고 겉과 속이 다른 미국, 왜 전쟁 종료에는 무관심한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최근 유출된 미국의 기밀 문서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세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의 '춘계 대반격'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을 뿐만 아니라 5월경에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이 붕괴될 우려도 있다고 봤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공개적으로는 다른 말을 해왔다. "러시아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며,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군을 축출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온 것이다. 한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른 전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내부 판단과 공개적인 입장을 종합해보면, 미국 역시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다수 나라들과 전문가들도 이렇게 전망한다. 그래서 승패의 관점을 떠나 조속히 평화협상을 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래야만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를 줄이고 글로벌 차원의 에너지·식량 위기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미국은 휴전이나 종전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격퇴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보면서도 무기와 장비, 그리고 정보를 제공해 줄테니 계속 싸우라고 하는 셈이다.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수 있는 무기가 부족해지자 한국 등 동맹국의 팔을 비틀어 무기를 내놓으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미국은 왜 이럴까? 미국의 목표가 러시아의 약화에 있다는 점은 바이든 행정부도 공공연히 밝힌 바이다. 또 미국의 주류는 유럽이 유럽연합(EU)를 기반으로 통합을 이뤄내 다극체제의 일원으로 부상하는 것을 경계했는데, 러-우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실권을 쥐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강화·확대를 이뤄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러-우 전쟁을 기반으로 러시아와 중국을 '한통속'으로 묶어 대중 봉쇄정책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달에 중국의 러-우 평화협상 중재안을 "함정"이라고 일축하면서, 오히려 중국이 러시아에 "치명적인 무기"를 제공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기류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도 중국의 러시아 무기 지원설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 재무부의 고위 관료들은 중국이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도울 만한 "체계적인 물적 지원을 해왔다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고 미국 <CNN>이 4월 7일 보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글로벌 사우스'를 중심으로 미국의 태도에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엔 총회 결의안에 대한 투표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인 2022년 3월 2일 유엔 총회에선 러시아 침공을 비난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에 기권·반대·무투표 등의 방식으로 동의하지 않는 나라들이 52개국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침략에 대해 구제·배상을 해야 한다는 지난해 11월 14일 결의안에 기권·반대·무투표를 선택한 나라들이 99개국으로 치솟았다. 특히 미국 주도의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나라들이 유엔 회원국의 20% 수준인 37개국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처럼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거리두기에 나선 이유들은 여러 가지가 섞여 있다. 우선 많은 나라들은 러-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의 위선을 새삼 떠올리고 있다. 21세기 들어 이라크를 침공해 불법 전쟁의 포문을 연 미영동맹은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
또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범죄에 책임이 있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미국 정부는 푸틴이 법의 심판을 받아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ICC가 2020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전쟁범죄 혐의를 수사할 계획을 밝히자, 미국 정부는 ICC에 제재를 부과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맡은 파토우 벤소우다 차장검사의 신용카드를 정지시키기도 했다. 많은 나라들의 눈에는 미국이나 러시아나 '오십보 백보'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의 불만은 더 깊은 곳을 향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의 관심이 온통 러-우 전쟁에 쏠리면서 과잉 채무, 식량·에너지·빈곤, 기후위기 등 개발도상국이나 지구촌의 문제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난민과 아프리카·중동 난민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차별적인 태도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불만은 미국 등 나토가 러-우 전쟁 종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미국 자신에게도 이롭지 않다. 미국이 러-우 전쟁 종결과 개발도상국의 위기 해결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자, 중국이 그 자리를 치밀하고도 빠르게 치고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 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구촌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적대적 경쟁'이 아니라 지구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의의 경쟁'으로 말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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