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과 적 가리지 않는 정보전, 안보국익이 최우선
“CIA의 시긴트 관성적 활용은 비신사적” 비판도 피해 갈 순 없어
(시사저널=조경환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외교적 속단은 그 피해가 두고두고 온다. 위계와 이중공작이 상수인 정보전에서는 더 그렇다. 사실 확인이 그래서 먼저다. 디지털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4월8일 보도한 미 합동참모본부 고위직용 일일보고서 유출 건은 사실 확인 단계로 넘어갔다. 펜타곤과 산하 국가안보국(NSA), 국가정찰국(NRO), 그리고 국가정보국(ODNI)과 중앙정보국(CIA),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등이 합동해 진위와 유출의 출처·범위, 미국 및 동맹국 안보 파장을 조사하고 있다. 4월9일부터 범죄성 수사를 주도 중인 연방수사국(FBI)은 조직 내 불만자나 국가 안보를 능동적으로 훼손하려는 내부 위협 등 동기에 주목한다.
첩보 수집 대상으로 특정된 이스라엘과 프랑스는 4월9일 조작과 허위라는 입장을 냈다. 한국 대통령실도 10일 "사실 확인 후 필요시 합당한 조치 요청" 선에서 대응했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1일 "2월28일 및 3월1일자 문서"임을 인정했다. 이종섭 국방장관에게 전화해 "유출 정보의 상당수 위조"에 견해를 같이하고 정보동맹으로서 신뢰와 협력을 재확인했다. 4월26일 한미 동맹 70주년에 즈음한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앞둔 한미의 고민이 묻어난다. 비밀 정보활동의 속성에 바탕을 둔 모호성 및 의도적인 침묵 관행이 읽힌다.
광범한 신호정보 수집망에 걸렸을 개연성
우선 허위정보전(disinformation)과 그 배후로 러시아를 의심하게 된다. 문건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전황 및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투능력에 대한 상세 기술인 데다, 뉴욕타임스 보도 직전인 4월5일 다수의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이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5개의 사진·문서 파일을 공유한 점 등이 정황증거다. "미국의 대러시아 정보 출처를 노출해 러시아가 이를 차단하도록 하거나, 미국의 동맹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비밀유지 능력을 의심하게 해서 정보 공유를 방해하려 한다. 첩보 수집에 동맹과 적이 따로 없음을 상기시켜 외교적 연대를 훼손해 서방의 대러 연합전열 이완을 노린다"는 전문가 진단이 이어진다. 우크라이나 측은 가공정보를 흘려 자국에 공포와 불신을 심어줌으로써 이번 봄 공세의 예봉을 꺾으려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전으로 간주한다. 반면 러시아의 준군사조직인 '와그너(바그너)그룹'과 연계된 텔레그램 측에서는 서방 정보의 음모와 가짜뉴스전을 상정한다.
국내 쟁점은 사뭇 정치적이다. 첫째, 국가안보실 김성한 전 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과의 대화 도청 여부다. 국방비서관 이름도 등장하지만, 이는 이 전 비서관 입에서 나온 것이어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와 같은 회의체라기보다 두 사람 간 통화로 가닥이 잡힌다. 논점은 CIA 등이 한국 영토에서 도청했는가, 아니면 NSA가 CIA와 합동으로 메릴랜드 벨츠빌 본부에서 '특별정보수집단'을 가동하거나, NSA와 NRO 등이 글로벌 통신감청·위성·신호정보망(STATEROOM) 및 민간기업들의 인터넷·컴퓨터 네트워크를 활용한 과학첩보 수집(프리즘)의 결과인가 하는 점이다.
전자라면 주권 침해 소지는 있다. '동맹국 정보 수집은 정보기관 간 협력이 원칙'이라는 신사협정 위반이다. 그렇지만 휴민트 전문인 CIA가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혹은 NSA와 합동으로 도청을 시도했을 때의 비용과 편익을 형량해 보면, 미 대사관 등에서 장비를 가동할 확률은 낮다. 동맹을 굳이 염탐하는 것은 낭비다. 능력 밖일 수도 있다. 그래서 NSA 등의 광범한 신호정보 수집망에 걸렸을 개연성이 있다. 이 경우 국민 시각에서는 불편하겠지만, 정부가 문제를 제기할 공간은 좁다.
국정원과의 '정협' 프로세스 거쳐 유통해야
현재 국제법의 통설은 비밀 정보활동을 전통적 주권 원칙의 예외로 인정한다. 묵시적 동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피장파장(Tu Quoque) 원칙'이 적용된다. 국정원도 그럴 것이기에 그렇다. 2013년 6월 NSA 계약직 직원이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무차별적 정보 수집 및 유엔과 한국·유럽 등 38개국 재미공관 도청" 등을 폭로했을 때도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 안보를 위해 정보활동을 하는 것처럼 미국도 하고 있다"는 스탠스를 취했다.
둘째, '대통령실 주변의 주한미군 시설에서 신호정보 수집 및 도청' 의혹은 한미의 연합정보태세를 몰각한 측면이 있다. 동맹을 적과 동일시하고 불신하기에 방책을 과도하게 세우라는 주문으로도 들린다. 주한미군의 핵심 정보부대인 미 8군 '501정보여단' 등의 정찰자산은 북한 핵미사일 등 대북 첩보 획득이 최대 관심사다. 한국과는 실시간 공유한다. NSA의 한국 지부인 서슬락(SUSLAK)에서는 한국 국방부 국방정보본부 예하 '777부대'와 주한미군 정보요원들이 합동 근무한다. 24시간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미·영·호주·캐나다·뉴질랜드의 정보동맹인 '파이브아이즈'의 시긴트 체계인 에셜론(ECHELON)과도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한국 몰래 정보를 처리할 구조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광범한 정보 수집에 대한 우리 국민 일반의 문제의식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CIA가 만약 NSA에서 동맹인 한국을 대상으로 수집한 시긴트(비밀정보 수집)를 관성적으로 분석보고서에 활용했다면 비신사적이고 무책임하다. 미 정보공동체의 허술한 문서 보안은 별개로 치더라도 CIA는 한국의 고위 수준 정보만큼은 국정원과의 '정협' 프로세스를 거쳐 유통함이 합당하다. 또한 국가안보실 종사자들의 보안수칙 준수 여부는 방첩 차원에서 짚고 넘어갈 여지가 있겠다. 안 그래도 한반도는 북핵 미사일 정보전 및 경제안보의 전장이다.
독일은 스노든의 폭로 여파로 "NSA가 베를린 미 대사관 안에 '특별정보수집단'을 운용해 메르켈 총리를 포함해 수천 명의 독일인 휴대폰을 도청"한 의혹이 불거지자 2013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항의 및 해명을 요구했다. 이는 이듬해 7월 CIA 베를린 지부장 교체로 봉합됐다. 2021년 5월30일 덴마크 방송에 "2012~14년 NSA가 덴마크 국방정보국(FE)의 해저 통신케이블을 이용해 독일·스웨덴·노르웨이·프랑스 고위 인사들을 감청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는 외교 쟁점으로 옮겨갔다. 2013년 10월 호세프 당시 브라질 대통령은 NSA가 자신의 이메일과 통화 기록을 열람했다는 폭로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의 해명 부족을 이유로 국빈방문을 취소한 적이 있다. 사안의 경중과 안보국익을 잘 따져 수습할 일이다.
조경환은 누구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정보원 고위 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 박사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과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거쳐, 현재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강원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및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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