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래 울음소리가 2만km 간다고? ‘침입자’ 인간만 못 듣는 이것[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4. 1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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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어크로스 펴냄/ 2만9000원
8개의 눈을 가진 깡충거미는 뛰어난 시력으로 먹잇감을 사냥한다. 이 덕분에 깡충거미는 거미집을 짓지 않는다. ⓒArtur Rydzewski
인간은 오감으로 세상을 감각한다. 보통 시각이 최우선시되는 감각으로 인식되고,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다른 감각은 개인의 주관에 따라 그 다음의 위계를 차지하곤 한다.

세계의 내부와 외형은 인간이 동일하게 지닌 신체기관의 고유 기능을 통해 인식되며, 그 변형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오감이 아닌 감각에 대해, 오감의 저편에 대해 인간은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오감이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세계의 ‘표준’일까. 오감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건 착각이며 그 인식은 대단히 오만한 일임을 폭로하는 책이 출간됐다.

신간 ‘이토록 굉장한 세계’는 경이로운 동물의 감각을 둘러싼 이야기다. 동물은 우리 주변에 있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느낀다. 이 책은 고작 가시광선만을 볼 뿐인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인간의 시각이란 얼마나 협소한지를 밝히면서,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세상의 동물이 얼마나 초월적인 감각을 지닌 경이로운 존재인지를 탐사와 실증으로 밝혀냈다.

카멜레온의 양쪽 눈은 독립적이어서 앞과 뒤를 동시에 쳐다볼 수 있다. ⓒVicente Villamón
우선 눈부터. 눈이 ‘좌우 2개’라는 건 인간의 관점일 뿐이지 자연계의 표준이 아니다.

한국에도 25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깡충거미’는 눈이 총 8개다. 크기도 1cm 남짓으로 작아 대개 귀엽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이 거미는, 그러나 보기와 달리 탁월한 사냥꾼이다.

그 이유는 껑충거미의 빼어난 시력 때문이다. 껑충거미는 중앙 눈이 패턴과 모양을 인식하는 동안 보조 눈이 대상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길이가 몇 mm에 불과한 이 눈은 소형견의 눈처럼 예리해서 껑충거미는 선명하게 세계를 본다. 눈이 2개여야 한다는 관점은 오직 인간만의 것이다. 자연에선 이런 원칙이 무의미하다.

8개의 눈이 많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불판에 구워먹는 그 흔한 조개 가리비를 생각해보자. 믿기 어렵겠지만 가리비에게도 눈이 있다. 그것도 수백 개다. 어패류에선 보기도 힘든 눈이 가리비에게는 보통 200개 남짓 달려 있다. 이 눈은 대단히 정교해서 정면부터 후면, 그리고 측면까지 달려 있다. 앞뒤 상황을 한번에 본다. 가리비는 이 시력을 이용해 적으로부터 도주한다. 캐스터네츠처럼 껍데기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헤엄쳐 도망가는 모습이 쉽게 관찰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혐오하는 파리의 촉각은 거의 초감각적이다. 파리 더듬이 끝부분은 온도 센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놀라운 점인 한쪽 더듬이가 다른쪽 더듬이보다 0.1도만 온도가 높아도 파리가 즉시 알아차린다는 점이다. 파리 더듬이는 그러므로 극도로 정교한 온도계다. 파리는 자신에게 가장 맞는 온도를 찾아내고 이에 따라 장소를 지속적으로 바꾸는데 이를 ‘주열성’이라고 부른다.

파리와 같은 작은 생물들은 주열성을 이용해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적정 온도의 지역을 찾아 헤맨다.

문어는 중앙 뇌의 지시 없이 독립적인 팔로 세상을 감지하고 탐험한다. ⓒJoe Parks
이번에는 소리. 20헤르츠보다 낮은 저주파는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고래가 초저주파를 이용해 소통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고래의 소리 인식이 들여다볼수록 놀랍다.

참고래의 울음소리는 무려 2만km를 간다. 광활한 바다에서도 고래는 미세한 소리를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바다는 그야말로 고래 소리로 가득하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고래 무리는 단지 바다에 사는 포유류 집단이 아니라 ‘음향적으로 연결된 개체들의 대규모 분산 네트워크’다.

인간이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부분을 쉽게 인식하는 미물도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방금 모래 속 알에서 부화한 작은 새끼 거북에겐 태어나기 전부터 내장된 ‘나침반’이 있다. 어설프고 앙증맞게 걸음을 옮겨 바다로 돌진하는 저 새끼 거북은 자기장을 인식한다. 바다에 단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지만 거북은 ‘유전적으로 암호화된’ 자기장을 느끼고 이를 판독해낸다. 일종의 자기 지도(magnetic map)다. 거북은 자기 지도를 따라 정교한 이동로를 장거리 여행한다.

이제 저자는 정의한다. “인간의 신체로 자연세계를 평가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 책이 단순한 동물 신체기관 연구서로만 그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나아갈 길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자연의 동식물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은 자연에 없는 자극을 만들어내는 침입자다. 그것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지는지도 모르는 새로운 자극을 인간은 자연에 지속적으로 ‘추가’한다.

해양 소음이나 빛 공해가 대표적이다. 바다에선 아무리 소음이 커도 인간이 별다른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지만 인간의 이런 인위적 자극은 해양 생태계에 해를 끼친다. 저자는 인간의 오감에 갇혀 세계를 재단하는 일은 이토록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종종 주변 환경을 균일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감각 공습’을 견디지 못하는 민감한 종을 몰아냄으로써 우리는 더 작고, 덜 다양한 개체군만 남겨둔다.”

작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20여개 언론사에서 모두 ‘2022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베스트북으로 꼽았고, 올해에는 미국 카네기 메달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모든 유기체는 자신의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인식한다”는 명제 앞에서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좁은 세계의 치명적인 유해종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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