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저리고 아팠는데 뇌종양일 줄이야”[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병원 전전했지만 끝내 원인 못찾아
코로나19 접종 후 두통-마비 증세
백신 부작용 아닌 뇌수막종 판정
종양, 뇌간의 80% 막아 심각한 상태
수술 후 방사선 치료 없이 완치 판정
조기 발견하려면 MRI 검사 필요
다른 장기에 생긴 양성 종양에 비하면 양성 뇌종양은 훨씬 위험하다. 양성 종양이 뇌 안의 작은 신경이라도 손상시킬 경우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양성 뇌종양이라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게 옳다.
뇌종양은 병기 구분 방식도 다르다. 다른 암의 경우 크기나 전이 여부를 감안해 1~4기로 나눈다. 반면 뇌종양은 양성일 때 1, 2등급으로, 악성일 때 3, 4등급으로 분류한다.
양성 종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뇌수막종이 가장 흔하다. 뇌수막종은 뇌와 척수를 보호하는 막에 생긴 종양이다. 일찍 발견하고 제대로 조치를 취하면 거의 대부분 완치로 이어진다. 다만 어느 부위에 발생했느냐에 따라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규순 씨(53)가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백신 이상 증세, 뇌종양이 원인”
장 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자영업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했다. 저녁에 미용실 문을 닫고 난 후 동네 하천을 따라 1만 보 정도를 걸었다. 국가건강검진 결과도 대체로 좋았다. 혈압과 혈당 수치도 모두 정상이었다.
40대 중반을 넘긴 2018년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내과에서는 위염이라고 했다. 두 달 동안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1년 가까이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여전히 체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목이 아파왔다. 정형외과에 갔다. 목 디스크일지도 몰라 컴퓨터단층(CT) 검사를 받았다. 정상이었다. 통증 주사를 맞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다 변비 증세까지 생겼다. 대장암 검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3년 동안 병원을 전전했지만 원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동안 무기력, 피로, 불면증, 통증은 더 심해졌다. 팔이 아파서 손님 머리를 만지는 것조차 힘들었다. 특히 손발이 저리고 등이 시려왔다. 차마 미용실을 관둘 수는 없어 휴일을 이틀로 늘렸다.
2021년 10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백신 접종 후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극심한 두통이 나타났다. 장 씨는 “목부터 배꼽까지 감각이 없었다. 뇌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며 당시 상태를 떠올렸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직행했다.
백신 부작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3년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신경과 질환일 것 같다고 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했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심각하다. 얼핏 보기에 종양이 뇌신경 거의 대부분을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는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8시간의 고난도 수술로 완치
서울아산병원 진료를 이틀 앞둔 2022년 1월의 새벽, 장 씨는 침대에서 일어나다 다시 쓰러졌다. 의식은 있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지역 의료원의 응급실을 거쳐 곧바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장 씨는 뇌와 목뼈(경추)가 연결된 부위, 즉 뇌간에서 뇌수막종이 자라고 있었다. 진료를 맡은 홍창기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양성 종양이었지만 뇌간의 80%가 막혀 있었다. 그대로 두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수술을 서둘러야 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뇌수막종 수술 자체는 아주 어렵지 않다. 다만 장 씨의 경우는 고난도의 수술이 예상됐다.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호흡을 하는 등 생존과 관련된 신경과 여러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수술 도중에 이 신경을 훼손하면 영구적인 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수술은 신중하게 진행됐다. 먼저 귀 뒤쪽으로 10㎝ 정도를 절개했다. 근육 조직을 하나씩 들어내고, 노출된 뼈에 구멍을 냈다. 수술 도구가 들어가고 종양을 꺼낼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작업에만 6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종양을 제거하고 끄집어내는 데는 2시간이 걸렸다.
장 씨는 수술이 끝나고 3일 만에 걸었고, 1주일 만에 퇴원했다. 손발 저림, 통증, 불면증 같은 증세는 약해지다가 퇴원할 무렵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장 씨는 “얼굴에 손을 대봤는데 따뜻하더라.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온기였다. 기적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뇌수막종 수술 후에는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미세 종양을 없애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 씨는 수술하고 3개월 후 시행한 뇌 MRI 검사에서 종양이 완전히 제거됐음이 확인됐다. 덕분에 방사선 치료 없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요즘에는 6개월마다 추적 관찰 중이다.
수술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건망증이 생겼고, 행동도 다소 느려졌다. 그래도 1년 정도가 지난 후 이런 증세는 상당히 개선됐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긍정 마인드가 강할수록 후유증도 적고, 회복도 빠르다”고 말했다.
●뇌수막종 증세 복합적으로 나타나
장 씨는 무려 3년 동안 뇌수막종에 따른 증세로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뇌수막종일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여러 증세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뇌수막종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대체로 두통이 심하면 ‘뇌에 종양이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꼭 그렇지는 않다. 두통과 함께 구토나 메스꺼운 증세가 나타난다면 뇌종양보다는 뇌출혈이 원인일 경우가 더 많다.
뇌종양이 생겼다면 마비나 저림과 같은 신경학적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난다. 장 씨도 양쪽 손발이 심하게 저렸다. 다만 실제로는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쪽에서만 이런 증세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 홍 교수는 “장 씨는 뇌간의 중앙부에 종양이 생겼는데, 이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대체로는 한쪽으로 치우쳐 종양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증세도 한쪽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비, 저림 외에도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야가 좁아지기도 한다. 갑자기 청력이 떨어진 것처럼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도 대체로 한쪽 눈과 귀에서만 증세가 나타난다. 이와 함께 예전보다 더 사레가 들린다면 이 또한 뇌종양의 원인일 수 있다.
장 씨는 소화불량, 무기력증 등 온갖 증세를 다 겪었다. 이 또한 뇌종양에 따른 증세일까. 홍 교수는 “소화불량은 뇌종양과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장 씨의 경우 소화불량 증세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바람에 장 씨 본인이나 의사도 뇌수막종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발견이 늦어졌을 거라고 추정했다. 장 씨는 불면증도 심하게 앓았다. 이 또한 뇌수막종과는 무관한 것 같다고 홍 교수는 판단했다. 악성 종양의 경우 불면증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양성 종양일 때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수막종 부위 따라 치료법 달라
뇌수막종이 발생하는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이 생기는 경향이 있지만 꼭 나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30대의 젊은 층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통계적으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2배 정도 많이 발생한다.
어느 위치에 발생하느냐에 따라 치료 난이도가 결정된다. 뇌의 표면에 발생할 경우 수술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수술하지 않고 관찰만 할 수도 있다. 종양이 작다면 방사선 치료(감마나이프)로만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장 씨처럼 뇌 안쪽 깊숙한 곳에 종양이 생겼을 경우 대처법은 달라진다. 장 씨의 뇌수막종 크기는 2.1㎝였다. 홍 교수는 “이 정도면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그대로 뒀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령 목을 뒤로 잘못 젖혔다가 사지마비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 씨처럼 종양이 계속 자라고 있다면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이런 경우 방치한다면 종양이 껌딱지처럼 뇌간에 착 달라붙어 버린다. 그 때는 아주 작은 상처만 나도 신경이 다칠 수 있고, 더 심각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호흡 중추를 다치게 하면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 주변 동맥을 손상시키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일찍 종양을 발견하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2년마다 주기적으로 뇌 검사를 해야 한다. 홍 교수는 “뇌 MRI 검사만으로 대부분 판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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