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 시점 정하는 게 민생인가
우선 처리한다는 법안 살펴 보니
7개 중 3개는 민생ㆍ개혁과 무관
민생법안 3개는 시급성 결여
시의적절한 민생법안 고작 1개
출석도 안 하는 국회 진정성 있나
국회의원들이 가장 즐겨 쓰는 어휘는 바로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없다. 그동안의 경험치 때문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최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들은 국회 운영 개선 관련 법안과 민생ㆍ개혁 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면서 손을 맞잡고 활짝 웃었다. 그런데 그들이 처리하겠다는 법안은 수준 이하의 내용이었다.
![대통령 취임 시점은 여야의 배려를 통해 얼마든지 상식적인 선에서 정할 수 있는 문제다.[사진=뉴시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4/14/thescoop1/20230414115628244npdc.jpg)
지난 4일, 김진표 국회의장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었다. 이날 김 의장 주재로 열린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양당은 국회 운영 개선 관련 법안과 민생ㆍ개혁 법안 7개를 4월 중에 우선 심사ㆍ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아마도 '거대양당이 민생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국민들로선 반길 일이지만, 문제는 이들의 합의를 믿을 수 있느냐다. 웃으면서 합의한 뒤 말을 바꾼 사례가 워낙 많아서다. 예를 들어보자. 2021년 7월 거대양당은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합의했지만 국민의힘이 입장을 바꿔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4월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당시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합의했음에도 국민의힘이 합의를 어겨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지 받았다.
국민의힘만 그랬던 건 아니다. 지난해 12월 예산안 처리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두고 맞서던 양당은 '선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로 뜻을 모았지만, 예산안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시작해 합의가 깨졌다.
설사 양당이 합의를 지키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거대양당이 "4월 중에 우선적으로 심사하고 처리하겠다"고 합의한 그 7개의 법안이 과연 민생과는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과연 우선적으로 처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의문이다. 7개의 법안은 국회법(2건)ㆍ공직선거법ㆍ민법ㆍ형법ㆍ의료법ㆍ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인데, 하나씩 살펴보자.
■ 합의법안❶ 국회법 개정안 = 먼저 국회법부터 살펴보자. 이번에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2건이다. 하나는 법안의 대표발의자 수를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원이 법안을 발의할 때 대표발의 의원 1명을 명시해야 하는데, 이를 3명(교섭단체 정당)까지 확대하자는 거다. 대표발의 의원이 여러 정당에 소속돼 있다면, 대표발의 의원의 정당을 따진 뒤 무조건 법안을 반대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란 계산에서다.
그럴듯한 얘기지만, 사실 의원들이 법안의 내용이나 민생에 미칠 영향 등을 따져보지 않은 채 당리당략으로 처리했다는 걸 자인하는 법안이다. 특히 양당은 이미 같은 내용으로 개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합의하고 말고 할 게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법안은 의원의 실적 쌓기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거대양당은 지난해 민생을 위한 중점 법안을 발표했는데, 양당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법안마저도 처리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4/14/thescoop1/20230414115629767fmnl.jpg)

또다른 국회법 개정안은 본회의의 모든 무기명 투표에 전자투표를 원칙으로 삼겠다는 내용이다. 현행법은 무기명 투표 시 '가' 혹은 '부'를 직접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한자 표기나 점을 찍는 등으로 인해 무효 처리되는 경우가 있어 의도치 않은 실수로 무효표가 발생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국회의원이 표기 하나를 제대로 못 해 무효표가 생긴다는 것도, 디지털 시대에 수기 표결을 한다는 것도, '여야의 대승적 합의'에 이런 수준의 법안을 포함했다는 것도 황당하다.
■ 합의법안❷ 공직선거법 개정안 = 거대양당은 공직선거법도 손을 보자고 했는데, 그 규정 또한 민생과 거리가 멀다. 다름 아닌 대통령 취임 시점을 '취임 선서 시'로 개정하는 내용인데, 오로지 권력자들을 위한 법안이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시작일인 5월 10일 0시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전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인 9일에 이사를 해야 했다.
이 때문에 0시에 대통령 권한을 이양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으니 대통령 취임 시점을 '취임 선서 시'로 바꾸겠다는 거다. 문제는 이게 꼭 법으로 정해야 할 일이냐는 거다. 법이야 어떻든 애초에 여야가 합리적인 이양 문화를 정착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 합의법안❸ 나머지 개정안들 = 양당은 반려동물 관련 민법 조항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법무부가 2021년 10월 발의한 개정안인데, '동물은 물건이 아님'을 규정해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2021년 기준 606만 가구(전체의 28.3%)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필요한 법안이긴 하지만, '시급한 민생현안'과는 거리가 멀다.
그외 나머지 법안들은 민생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꽤 의미가 있다. 형법 개정안(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1년 12월 발의)은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현행 업무방해죄는 실질적인 피해를 유발하지 않아도 처벌이 가능해 노동자, 소비자,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막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개정안은 업무방해죄의 요건을 '생명, 신체, 재산, 경쟁질서에 침해가 발생한 경우'로 제한하고, 법정형을 '공무 방해'에 준하는 수준으로 조정(현재는 '사무私務 방해'가 더 높게 책정)하겠다는 거다.
의료법 개정안은 일정 규모 이상 의료기관에 임종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병원 내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가 가족과 함께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해줄 공간을 마련해주자는 건데, 최근 존엄사(생명연장 치료 중단) 이슈를 계기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발의했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됐는데 2020년 6월 다시 발의했다.
하지만 두 법안 역시 여야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만큼 시급한지는 의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민생과 직결되고 시의성까지 갖춘 법안은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이 유일하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했는데, 골자는 대출금 연체 시 연체 부분에 한해서만 연체이자를 부과하자는 거다.
연체한 금액만큼 이자를 붙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데, 지금은 원금 전체에 연체이자를 부과하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겠다는 거다. 금리인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가려움을 긁어줄 수 있는 법안이다.

종합하면 7개 법안 중 국민에게 쓸모있는 건 고작 3개뿐이고, 그중 1개 법안만이 '우선 처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는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양당은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민생법안을 발표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7개의 법안을, 국민의힘은 10개를 선정했다.
여기엔 공교롭게도 공통된 법안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원재료 가격 변동분을 납품대금에 연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ㆍ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과 하도급법 개정안이다.
당시 정책위원장이었던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 법을) 발의했기 때문에 병행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우선 처리' 합의에 이 법안은 빠졌다.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른 지금과 같은 시기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꼭 필요한 데다 여야 공감대까지 형성된 법안은 제외한 거다. 민생을 챙기겠다는 거대양당의 제스처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다.
국회 대정부질문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국회 본회의 개의 시 참석 의원은 고작 96명이었다. 산회 직전까지 남았던 의원은 33명에 불과했고, 본회의 때 줄곧 자리를 떴다가 산회 때에 자리를 지키러 돌아온 의원이 13명이었다. 과연 국회가 민생을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